공터의 풍경 오정순 공터에 내리는 비는 구겨진 절기의 줄기가 느릿합니다 버려진 액자가 있고 시는 난蘭 한 포기가 비에 젖고 있습니다 일직의 빗줄기가 지나가고 뿌리를 잡고 있는 바위에 푸른 이끼라도 살아 날듯합니다 깨어진 유리에는 깨어진 햇볕 어울리겠지요 반짝, 비가 갠 공복의 허공엔 햇볕이 따뜻합니다 소슬하게 바람이라도 불었는지 흔들린 난蘭 주변에 먹물이 번져 있습니다 골목을 막 들어선 봄의 등 뒤로 아지랑이 배접이 구불구불하고 몇 년 아니, 몇 십 년 쯤 피어있었을 꽃대가 피곤해 보입니다 붉은 노을이라도 세 들어 있는지 낙관엔 오래 흔들린 악력握力이 흐릿합니다 낡은 시선만 가득한 풍경, 떠나 온 벽의 경사가 누워 있습니다 어쩌면 저 풍경의 크기만 한 흰 공터를 벽에 남겨놓았을지도 모르지요 상실의 흔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