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다 합니다 /변현상
1.
정년퇴직 박갑수 씨 단독주택 대문에도
비 젖은 고지서가 연체로 꽂히면서
파도가 들이닥쳤다 침몰하는 어선 한 척
2.
콧물감기 훌쩍이는 어둑새벽 입동 무렵
골목 어귀 녹슨 트럭 어깨 높은 인력 시장
대처분
부도난 제품
벽보가 또 붙었다
3,
전무이사 상무이사
다 지나간 명함일 뿐
구명조끼 입을 채로 구명탄은 쏘아야지
일용직
가능합니다
뭐든지 시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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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을 또 까먹다
파일이 또 삭제됐다 로그인하다 끊긴 폴더
달빛 지운 까만 밤이 전두엽에 스며들면
대뇌의 모든 전원이 통째로 정전된다
입김 어린 차창 위에 손가락으로 쓴 계약서
한눈팔다 엔터키 친 바이러스 먹은 PC
감염된 파일이 된 양 살아날 줄 모르네
공짜 같아 막 눌렀던 무제한 테이터처럼
게워내지 못하는 할인 기간 넘긴 요금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억울한 건 할 수 없다
고장이 난 사람은 사람이 고치니깐
열고, 닫고 껐다, 켠다, 도대채 알 수 없다
그런데 밥은 먹었나? 발걸음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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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벽동
―목욕을 시켜드리며
장미향 가득하던 오월이 어제인데
움켜쥐면 부서지는 당신은 매미 허물
오늘은 어쩐 일인지 해종일 맑습니다
아득히 손 흔들 날 소식 없이 오겠지만
꽃 피고 꽃 지는 게 당신의 뜻인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젠 벗고 씻어야죠
땀 훔치던 어미의 길 차마 정녕 잊겠어요
철없는 삼남 이녀 물리고 업고 안고
아직도 그때의 일을 어화둥둥 떠가는
<2019년 천강문학상 당선작>
2021년 1월 3일 오전 1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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