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김진옥 ―목련/무현금 목련 김진옥 꿈결에 다녀가신 어머니 흔적인가 실비 고운 창문 밖에 다소곳한 저 조바심, 설치다 봄을 놓칠까 꽃등 밝혀 두셨네 무현금 김진옥 물결을 타고 노는 거문고 여섯 줄을 흰 도포 자락 끝에 차례차례 풀어 두고 한 시름 당겼다 놓았다 서산을 넘는 달빛 2021년 11월 05일 오전 10시 8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11.05
<시조>늙은 가스렌지 /우정숙 늙은 가스렌지 우정숙 처음엔 파란 불꽃 그을름도 없었다 손끝 살짝 닿으면 찌지직 스파크 일고 두 눈빛 알전구처럼 총명하고 맑았다 어느새 미간의 주름 까맣게 새긴 저녁 옆구리 툭툭 치면 어제 일도 기억 못 해 또 하루 거꾸로 더듬다 되물어 다그친다 강도 높던 점화력도 스스로 기가 죽고 깜박깜박 멀어지는 충전의 시간 위로 무덤덤 말 수는 줄고 정물로나 앉았다 ―시조집『문득』(목언예원, 2021) 2021년 11월 05일 오전 9시 11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11.05
<시조>두룸박, 드레박, 두레박 /이정재 두룸박, 드레박, 두레박 이정재 손사래 거두지 못하는 벽이 있다면 저마다 건너지 못하는 강을 만나면 우물가 찾아오시어 두드려요 두룸박* 장마진 여름날에 입씨름하다 지치면 마음속 우물가에 드레박*을 툭 던져 내면이 바닥 치는 소리 들어봐요 두 귀로 심금이 요동치고 눈물샘 흔들어야 두레박 의지하며 밑바닥에 닿아야 가슴 뻘 뚫리잖아요 속내 깊은 물맛에 * 두룸박 : 충북, 전북 방언. * 드레박 : 강원지역 방언. ―시조집『지구대 일기』(고요아침, 2021) 2021년 11월 05일 오전 8시 59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11.05
<시조>코뚜레 들녘 /강문신 코뚜레 들녘 강문신 길은 얼떨결에 반환점 휘돌아갔어 뉘 모를 아쉬움만 저만치 나앉아서 꼴똘히 반생을 보네 술 사발 기울이네 FTA 나발 불지만 곧들을 농심은 없어 걷힐라면 도로 안개 겹겹 그 어질머리 들녘은 코뚜레 황소나 그저 묵묵 끌고 끄는 기를 싸도 겹던 날들 부릴 수도 없던 날들 돌아보면 아득도 해라 가슴 치는 그리움 여인아, 해동解冬의 들녘으로 우리는 함께 가자 ―시조집『해동의 들녘』(문학과사람, 2021) 2021년 11월 05일 오전 8시 47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11.05
<시조>꽃무릇 별사(別辭) /전연희 꽃무릇 별사(別辭) 전연희 남겨둔 발자국을 그대 딛고 돌아오라 살풀이 긴 자락을 모둠발로 내린 자리 뜨거워 눈을 감으면 가슴속도 불길이다 눈물을 별빛의 씨 뿌리 속 젖는 온기 헝클린 길을 닦아 붉은 살점 뚝뚝 진다 스러져 뼈마저 녹아 빈 하늘이 고이도록 오가는 꽃잎끼리 받드는 소신공양 명치에 갇힌 돌이 이보다 가벼우리 한 무리 지는 꽃 앞에 맑게 우는 종소리 ㅡ『서정과 현실』(2021, 상반기호) 2021년 10월 26일 10시 26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10.26
폐가 /나대영 폐가 나대영 비탈길 언덕 위에 누워 있는 집 한 채 아궁이 잿더미엔 타다만 장작개비 아이들 그 웃음소리 다 어디로 갔을까 2021년 10월 1일 16시 29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10.01
하현下弦 /김숙 하현下弦 김숙 속울음 서걱대는 스무 이레 시름너머 바람도 잘 날 없는 생가지 품어 안고 여위는 쪽배 하나가 칠흑 바다 건넌다 2021년 10월 1일 14시 14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10.01
<시조> 가벼운 방 /양정묵 가벼운 방 양정묵 할머니의 헌 수레가 고개를 넘어간다 힘겨운 들숨날숨 조각구름 물고 간다 저 높은 달동네에는 가벼운 방이 있다 2021년 9월 30일 15시 26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09.30
빈 배 ―박권숙 /박기섭 빈 배 ―박권숙 경상도 산 곳곳에 물을 솟아 지천인데 정작 그 물을 모아 흐르는 건 낙동간 뿐 칠백리 강물만 같아라 쉰아홉의 한뉘여 시조 3장 가얏고에 목숨 줄을 걸어 놓고 거두어 피멍인가 터뜨려 울음인가 이 저승 오가는 나루터 빈 배 두고 간 이여 ㅡ『시조시학』(2021, 가을호) 2021년 9월 14일 오전 7시 11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09.14
<동시>뽀얀 새 흙 /최영재 뽀얀 새 흙 최영재 지하철 공사로 땅 속 깊은데서 퍼 올린 흙더미를 아파트 공원에 듬뿍 뿌려주니 새 흙은 난생처음 보는 꽃, 나무에 놀라고 정원 흙은 뽀얀 흙을 토닥이며 ―어머머, 꼭 아기 살 같애. 서로 놀라 입을 딱 벌렸대요. ㅡ동시집『고맙지, 고맙지』((아침마중, 2021) 2021년 8월 27일 오전 8시 17분 2021 다시 필사 시 202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