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레자식
김인육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
여든셋, 치매 앓는 노모를
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가 두 손 든 아내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
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
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닐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
에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내다버릴지 모를
두려운 가족의 품속으로 허겁지겁 돌아온다
고려장이 별 거냐
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쓸리어
못 죽고 사는 내 신세가 고령장이지
어머니의 정신 맑은 몇 가닥 말씀에, 폐부에 찔린 나는
병든 개처럼 허정거리며
21세기 막된 고려인의 집으로 돌아온다
천하에 몹쓸, 후레자식이 되어
퉤퉤, 돼먹지 못한 개살구가 되어
―시집『잘가라 여우』(문학세계사, 2012)
―계간『다층』(200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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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자식
오봉옥
울 아덜은 하늘이 내린 자석이어라우
울 어매 날 두고 단 한번도
당신이 낳은 자식이라 하지 않았네
내가 사고 쳐 속 썩일 때에도
회초리 대신 눈물 글썽거리시며
태몽이야길 꺼내곤 했지
글씨, 마당에 비양기 한 대가 떨어졌시야
근디 그 비행기 사다리를 볿고
학 한 마리가 영판 멋드러지게 내려오드라
그게 니다
긍께 넌 하늘이 내려준 자석 아니냐
그런 울 어매 돌아가셨는데
난 참 좋네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전화하던
치매 걸린 어매 목소리 듣지 않으니 좋고
이젠 가슴 졸이며 잘 일도 없으니
이보다 더 홀가분 할 순 없네
―계간『시와시학』(2020,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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