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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이우디
처음 본 순간 울고 싶어서
입술 붉은 장미와 꽃결 보드란 패랭이와 캐모마일 향에 취한, 집시를 꿈꾸는 여름밤의 맨살 깊숙이 파고들어 꽃물 도는 한 마디에 한 목숨 걸고 싶어서
너를 태우고
나를 태우고
중심을 읽는다
빈 칸칸 너를 쓴다
ㅡ시집『수식은 잊어요』(황금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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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조선의
산다는 것이 결국
살아남는 것임을 알았을 때
얼굴에서 굳은 표정이 하나씩 없어져도
자구만 달아나는
웃음만은 잡아두려고 애를 태웠습니다
하루에 서너 개씩
시나브로 얼굴에서 표정이 빠진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 모습이 핏기없는 무표정이라면
진저리치고 싶을 거에요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어요
어느 누가 손 내밀어 주겠습니까
하소연할 곳도 없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웃음만은 잃지 마세요
슬픔도 실타래처럼 뭉치면
둥근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어디서 바람이 거칠게 부는지
구름의 옆구리가 아파보이는 오후
갸름하고 아름다운 목을 보세요
똑바로 태양을 쳐다볼 수 없어
웃음 한 조각 들어 올리지 못하는
엉성한 그림자뿐입니다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 가고
웃음의 안쪽에
울음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아, 산다는 것은
멋모르고 가장 보기 좋은 무게를 곧추세우로
견디는 일일 줄이야
자주 도달하는 영혼 속으로 덧나는 상처
누구에게나 제 몫의 시련이 있다는 것을
살아보니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ㅡ낭송시집『꽃으로 오는 소리』(시꽃피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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