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784

화양연화 시 -류시화/조윤희/김사인/김인구/

화양연화 류시화 나는 너의 이마를 사랑했지 새들이 탐내는 이마 이제 막 태어난 돌 같은 이마 언젠가 한 번은 내 이마였던 것 같은 이마 가끔 고독에 잠기는 이마 불을 끄면 소멸하는 이마 스물두 살의 봄이었지 새들의 비밀 속에 내가 너를 찾아낸 것은 책을 쌓아 놓으면 둘이 누울 공간..

나비 시 모음 -윤곤강/김기림/정한모/복효근/김용택/이진영/김사인/

나비 윤곤강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에 맧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

시창작강의 /안도현 -내 눈을 감기세요/김이듬

시창작강의 안도현 내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 선배들이 말했죠 고독한 체하지 마라 고독에 대해 쓰지 마라 제발 고독, 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마라 나는 40년 넘게 고독을 피해 다녔죠 고독이 다가오면 앞발로 걷어차 버렸고 강가에 갔을 때는 얼음장을 강물에 던져 버렸죠 얼음에 살을 벤 교각이 울더군요 고독하지 않기 위해 출근을 했고 밥이 오면 숟가락을 들었죠 강연 요청이 오면 기차를 타고 갔고 어제는 대통령선거를 도왔어요 오늘은 다초점렌즈를 바꾸러 안경점에 갔고요 오래 읽지 못한 시집 세 권과 문예지 열댓 권을 새벽에 읽었어요 멀리 피하면 금세 따라붙고 고개를 돌리면 얼굴이 바뀌더군요 고독한 상점들 앞에서 멧돼지가 트럭을 들이받은 거 메모해두세요 고독하지 않으려고 간판을 내다 걸었다는 것도 흰 종이를 들여다..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천수호 -내가 아버지의 구근식물이었을 때 /신정민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천수호 아버지는 다섯 딸 중 나를 먼저 지우셨다 아버지께 나는 이름도 못 익힌 산열매 대충 보고 지나칠 때도 있었고 아주 유심히 들여다 볼 때도 있었다 지나칠 때보다 유심히 눌러볼 때 더 붉은 피가 났다 씨가 굵은 열매처럼 허연 고름을 불룩 터뜨리며..

데칼코마니 -김지유/이민화/신철규/김현주/김현주/우진용/황희순/박주용/정혜선

데칼코마니 김지유 뭉그러져야 완성되는 그림 형체도 없이 짓이길 때 비로소 만나는 늘 처음 보는 나비, 데칼코마니 끈적이는 우연이 달라붙어 양쪽 날개는 찢기고 지루한 연애가 몸을 바꿔 오는 시간 펼쳐지는 것이 나비만은 아니었겠지 하지만 짓누를수록 기억은 더 푸르게 날아 지독..

부부 /함민복 =2인용 자전거 타기 /문 숙

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

조춘(早春)/신달자 -조춘(早春)/이시영

조춘(早春) 신달자 맑은 하늘에서 푸른 면도칼이 떨어져 나의 어디를 스쳤을까 혀끝을 내어미는 꽃나무처럼 나의 몸에 피가 맺히고 있다 몰매를 맞아 허약해진 귀여 그치지 않는 초인종 소리에 방향도 찾지 못해 문이라는 문은 모두 열고 있는 봄날 오후에 (『봉헌문자』. 현대문학사. 197..

동백 시 모음 -박미란/한춘화/한이나/문충성/김형출/유안진/김지헌...외

동백 박미란 동백은 집중하며 떨어진다 무엇이든 내리막이 중요하니까 물의 온도, 바람의 온도, 저 달의 온도 언젠가 두고 갈 것들이다 꽃보다 내가 먼저 시들 테지 뿌리가 얼기 전에, 하루가 절박하기 전에 숨을 불어 넣자 어디로 가고 있나 한 쌍의 남녀가 긴 망설임 끝에 헤어졌다 피부..

남해 금산/이성복 -돌의 새/장석남 -돌이 된 새/정선희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시집『남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