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784

이서화 -바람의 집/바람 조문/그림자의 집

바람의 집 이서화 사북*이라는 말, 접힌 것들이 조용히 쉬고 있는 곳 접린의 힘을 가진 나비는 날갯짓 횟수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 몸을 열어보면 다 풀어진 사북이 들어 있을 것이다. 맨 처음 가위는 풀들이 겹치는 모양에서 본을 따왔을 것이고, 가윗날 지나간 옷감은 그래서 펄럭일 줄..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최금진/권순자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최금진 차는 계곡에서 한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니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웃고만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

사윤수 -슬픔의 높이

슬픔의 높이 사윤수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은 중년 여자가 운다 ​미세하게 흐느끼며 훌쩍훌쩍 콧물을 삼킨다 ​마음 아파 우시는가몸이 아파 우시는가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뒤인지 모를, 휴대폰을 켜서 들여다보고 ​휴대폰을 끄며 고개 떨군다 ​그 속에 아픔이 ..

담쟁이 시 모음 -도종환/손현숙/나해철/조운/윤재철/이경임...외

담쟁이 시 모음 -도종환/손현숙/나해철/조운/윤재철/이경임...외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벼/이성부 -갈대는 배후가 없다/임영조

벼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밝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우리들의 양식』. 믿음사. 197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갈대는 배후가 없..

정호승 -부석사 가는 길/그리운 부석사

부석사 가는 길 정호승 부석사 가는 길로 펼쳐진 사과밭에 아직 덜 익은 사과 한 알 툭 떨어지면 나는 또 하나의 사랑을 잃고 울었다 부석여관 이모집 골방에서 젊은 수배자의 이름으로 보내던 그해 여름 왜 어린 사과가 땅에 떨어져야 하는지 왜 어린 사과를 벌레가 먹어야 하는지 벌레도..

자목련 -임영조/최도선

자목련 임영조 화창한 봄날 고궁 뜰을 혼자서 거닐다가 우연히 마주친 여인 방긋이 웃으며 아는 체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얼핏 생각 안 나는 저 지체 높고 우아한 자태 어느 명문가 홀로된 마님 같다 진자줏빛 비로드 저고리에 이루 다 말로 못할 슬픔이 서려 앞섶에 살짝 꽂은 ..

비 시 -김정란/정지용/장만영/김억/문인수

비 김정란 어느 하늘을 돌아왔을까 내 쓸쓸함의 새 집 짓는 소리 살과 살 사이에서 하나도 아프지 않게 그 집 창가에 오래도록 머리 기대고 울지 않는, 우는 여자 하나 나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한 새…… 머무는 새…… 젖는 날개 언니 같기도 하고 나 같기도 하고 새벽이 올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