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이성부 -갈대는 배후가 없다/임영조
벼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밝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우리들의 양식』. 믿음사. 197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갈대는 배후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