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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임영조
화창한 봄날
고궁 뜰을 혼자서 거닐다가
우연히 마주친 여인
방긋이 웃으며 아는 체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얼핏 생각 안 나는
저 지체 높고 우아한 자태
어느 명문가 홀로된 마님 같다
진자줏빛 비로드 저고리에
이루 다 말로 못할 슬픔이 서려
앞섶에 살짝 꽂은 금빛 브로치
햇빛 받아 더욱 눈부셔
함부로 범접하기 황송한지고
세상에 아직 잔정이 많아
서둘러 치장하고 봄 마중 나온 마님
안부를 묻듯 실바람만 건듯 스쳐도
금세 눈물이 앞을 가려
하르르 꽃잎부터 떨구는 작별
그 후로 세상은 또 한 차례
화사한 소문이 나돌 듯
별의별 꽃말이 분분하였다.
ㅡ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2 (제4시집 귀로 웃는 집)』(천년의 시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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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최도선
눈 쌓인 혹한 속에 한 남자가
핏덩이 애 하나 안고 문 앞에 섰다
당신 남편 닮지 않았느냐며 곁방으로 밀고 들어온다
잠시 머리에 마른 벼락이 내리쳤다
남편은 애첩 둔적 없다며 본 척도 않는다
남자는 제 누이가 난산으로 애 아빠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떴다며 땅을 친다
엄동 설한에 핏덩이를 내몰지도 못하고
절벽에 뿌리 걸친 나무를 보듯 몇 날을 보냈다
굴주린 사자 같던 그 남자, 며칠 만에 내놓은 것은
애 태어나기도 전에 애 아빠가 주고 갔다는 유일한 쪽지
나중에 찾아와라 이 길 동
내 남편의 이름과 동명
봄 되어 화분갈이 떼 들여놓은 나무에서 핀
자목련이 북쪽을 향하고 있다
ㅡ계간『시와사람』 (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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