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최금진
차는 계곡에서 한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니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웃고만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
너무나 흔해빠진 국산이었다
함몰된 이마에 붉게 솟구치다가 말라갔을
여자의 기억들은 망치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흐물거리는 지갑 안에 접혀진 메모 한장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헤벌어진 해골의 웃음이
둘러싼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 무엇이었을까…… 메아리가
축문처럼 주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시집『새들의 역사』(창비, 2007 )
[제1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 (창비, 2001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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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권순자
형사님, 제 손을 보세요
제 손가락에는 지문이 없답니다
파출부로 나날이 남의 집 살림을 하고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보낸 많은 시간들이
제 지문을 자갈처럼 훑고 지나갔지요
닳아버린 지문, 닳아버린 제 청춘에
단칸집 살림이 흔들거리더니
제 남편이 실직까지 해버렸네요
구인센터를 돌림방처럼 돌지만 늘 빈손이라서
제 허기진 몸에 신열이 올라
그만 먹을 것을 도둑질했네요
3개월 된 아이 울음이 환청으로 들려 그만
애기 분유를 훔쳤네요
제 지문이 없으니 어디에다 무엇으로 인주를 묻혀
제 죄를 찍을까요
눈물 닳은 싸늘한 거리 어디에
제 인생지문을 찍을까요
―시집『애인이 기다리는 저녁』(시선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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