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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윤수 -슬픔의 높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9. 11. 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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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높이


사윤수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은 중년 여자가 운다
​미세하게 흐느끼며 훌쩍훌쩍 콧물을 삼킨다
​마음 아파 우시는가몸이 아파 우시는가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뒤인지 모를,
 
휴대폰을 켜서 들여다보고
​휴대폰을 끄며 고개 떨군다
​그 속에 아픔이 저장되어 있는지
​그 속의 아픔이 삭제되지 않는지
​실밥처럼 투둑 터질 듯 울음을
​손수건으로 꾹꾹 여민다
 
슬픔은 식물성이어서
고도 칠천 미터 상공에서도 발아하는구나
​화물칸에 싣지 못하고
선반에 따로 올려놓을 수 없는 슬픔
​무심한 구름 속을 날아가는 쇳덩이 안
​이쯤 높이에서도 슬픔은 창궐하나니
 
항로를 이탈한 그녀의 눈물이
​기류가 불안정한 지역을 오래 통과하고 있다
​덜컥 덜커덕, 철렁, 허공의 비포장 길을
​야윈 슬픔 홀로 가고 있다




―계간『시산맥(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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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높이

사윤수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은 중년 여자가 운다
미세하게 흐느끼며 훌쩍훌쩍 콧물을 삼킨다
마음 아파 우시는가
몸이 아파 우시는가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뒤인지 모를,
휴대폰을 열어 들여다보고
휴대폰을 닫으며 고개 떨군다
그 속에 아픔이 저장되어 있는지
그 속의 아픔이 삭제되지 않는지
실밥처럼 툭툭 터질 듯한 울음을
손수건으로 꾹꾹 여민다

슬픔은 식물성이어서
고도 칠천 미터 상공에서도 발아하는구나
화물칸에 싣지 못하고
선반에 따로 올려놓을 수 없는 슬픔
무심한 구름 속을 날아가는 쇳덩이 안
이쯤 높이에서도 슬픔은 창궐하나니
항로를 이탈한 그녀의 눈물이
기류가 불안정한 지역을 오래 통과하고 있다
허공의 비포장 길을
흔들리는 슬픔 혼자 가고 있다



ㅡ월간『모던포엠』(2019,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