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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중앙시조대상] 단추 달다 끄적인 메모의 깜짝선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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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춘시조상 - 김나경

구멍

기둥이 풀려있는 단추를 그러안은
 
헐렁한 하품이다
배고픈 결속이다
 
열리고 닫히는 것이
지금 잠시 흔들린다
 
생명이 없는 것은 그 어둠을 알 수 없지
 
맨 처음 잠겼으니
맨 나중 풀린다는
 
입술이 어처구니없게
헛소리를 물고 있다
 
소통이나 화해 같은 말랑하고 둥근 약속
 
나가려는 너를 잡고
매달리다 떨어져도
 
한 가닥 실오라기는
변치 않을 흔적이다

조심조심 건너온 2020년 한 해가 저무는 12월, 당선 소식은 구름으로 자욱한 하늘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이 무게가 기쁨일까요. 한순간 먹먹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예반장을 하면서도 대학진학은 문창과가 아닌 군사학과를 지망한 것은 집안의 큰 그릇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해군으로 근무하면서도 마음속 새 한 마리는 정박한 배 안에 있지 아니하고 늘 먼 하늘을 우러러 날고 있었답니다.
 
군대라는 조직생활에서 혼자 단추를 달다가 메모했던 것이 이렇게 큰 영광을 주다니 무슨 말을 어찌해야 도리를 다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헐렁한 하품처럼, 실기둥이 풀어진 단추를 그러안고 있는 그 구멍의 결속, 열리고 닫히는 것들의 소통과 잠기고 풀리는 것의 화해를 잠시 생각했습니다.
 
스물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세 번을 생각하고 한 번 말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말수를 줄이는 대신 먼 곳을 보면서 눈을 맑히고자 했습니다.
 
당신 문학의 뜻은 접고 우리 자매를 위해 묵묵히 걸어오신 엄마와 재주 많은 여동생의 조언, ‘중앙일보 시조백일장’이 제겐 스승입니다. 철없는 제 시조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발자취를 따라가며 시조단의 쓸모 있는 주춧돌이 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꿈을 다 펼치지 못하고 떠난 단원고등학교 후배들 생각에, 변치 않을 한 가닥 실오라기 흔적을 남깁니다. 
 

◆김나경

김나경

1994년 서울 출생. 해군부사관 복무 후 간호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다. 2019년 ‘항해일



[출처: 중앙일보] [제39회 중앙시조대상] 단추 달다 끄적인 메모의 깜짝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