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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에서
나호열
길은 옛길이 좋아
강 따라 굽이치며 가다가
그리움이 북받치면 여울목으로 텀벙 뛰어들고
먼 이름 부르고 싶으면
산허리를 칭칭 동여매어 돌다가 목이 메고 말지
그렇게 낮게 낮게
풀꽃마냥 주저앉은 사람들
고난으로 땀 흘리는 마을이라고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을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몰라
옛길 사라지고
산은 가슴이 뚫리고
강은 거대한 다리에 가위눌리고
막장에서는 더 이상 백악기의 더운 피가
솟구치지 않는다
빠르게 지나가는 일장춘몽의 투전 앞에
노고의 땀방울은 진주처럼 빛나는데
길도 가다가 잠시 멈추는 노쇠한 역 앞에
낙원회관 있다
허리끈 마음껏 풀고 죄짓지 않고 자랑스럽게 번 돈으로
소 등심 몇 점 붉은 마음을
불판 위에 올려놓는
나그네 몇 있다
―시집『촉도蜀道』(시와시학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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