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고한에서 /나호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2. 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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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에서 


 나호열

    

 

길은 옛길이 좋아

강 따라 굽이치며 가다가

그리움이 북받치면 여울목으로 텀벙 뛰어들고

먼 이름 부르고 싶으면

산허리를 칭칭 동여매어 돌다가 목이 메고 말지

그렇게 낮게 낮게

풀꽃마냥 주저앉은 사람들

고난으로 땀 흘리는 마을이라고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을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몰라  

 

옛길 사라지고

산은 가슴이 뚫리고

강은 거대한 다리에 가위눌리고

막장에서는 더 이상 백악기의 더운 피가

솟구치지 않는다

빠르게 지나가는 일장춘몽의 투전 앞에

노고의 땀방울은 진주처럼 빛나는데

길도 가다가 잠시 멈추는 노쇠한 역 앞에

낙원회관 있다

허리끈 마음껏 풀고 죄짓지 않고 자랑스럽게 번 돈으로

소 등심 몇 점 붉은 마음을

불판 위에 올려놓는

나그네 몇 있다

 

 

 

시집촉도蜀道(시와시학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