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 이가림 석류 이가림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11.26
노루귀꽃 / 김형영 노루귀꽃 김형영 어떻게 여기 와 피어 있느냐 산을 지나 들을 지나 이 후미진 골짜기에 바람도 흔들기엔 너무 작아 햇볕도 내리쬐기엔 너무 연약해 그냥 지나가는 이 후미진 골짜기에 지친 걸음걸음 멈추어 서서 더는 떠들지 말라고 내 눈에 놀란 듯 피어난 꽃아 (『낮은 수평선』. 문학..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11.13
꽃 / 박두진 꽃 박두진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깊섶 위에 떨꿔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10.26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문학》2호(1934. 2)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10.17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풀푸레 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룰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10.11
담쟁이 / 도종환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10.06
감나무 / 이재무 감나무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10.04
철새 / 감태준 철새 감태준 바람에 몇번 뒤집힌 새는 바람 밑에서 놀고 겨울이오고 겨울 뒤에서 더 큰 겨울이 오고 있었다 "한번……" 우리 사는 바닷사 둥지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보자" 내가 아직 모르는 길 앞에서는 달려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때, 아버지는 바람에 묻혀 날로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9.13
미성년의 강 / 박태일 미성년의 강 박태일 산과 산이 맞대어 가슴 비집고 애무하는 가쟁이 사이로 강이 흐른다. 온 세상의 하늬 쌓이듯 눕는 곤곤한 곤곤한 혼탁. 멀어져가는 구름 모양 한없는 나울을 깔면서 대안의 호야불을 찾아나서는 물길. 물 위로 물이 흐르듯 얼굴을 가리며 무엇이 우리의 슬픔을 데려왔..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9.12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