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새잎 / 박노해 강철 새잎 박노해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하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 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9.03
외상값 / 신천희 외상값 신천희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동안 세들어 살고도 한 달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9.03
바람 속에서 / 정한모 바람 속에서 정한모 1. 내 가슴 위에 바람은 발기발기 찢어진 기폭 어두운 산정에서 하늘 높은 곳에서 비정하게 휘날리다가 절규하다가 지금은 그 남루의 자락으로 땅을 쓸며 경사진 나의 밤을 거슬러 오른다 소리는 창밖을 지나는데 그 허허한 자락은 때묻은 이불이 되어 내 가슴 위에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8.24
제비꽃 꽃잎 속 / 김명리 제비꽃 꽃잎 속 김명리 퇴락한 절집의 돌계단에 오래 웅크리고 돌의 틈서리를 비집고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꽃잎 속을 헤아려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어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는 못했으니 제비꽃 꽃잎 속처럼 나 벌거벗은 채 천둥치는 빗속을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내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8.22
어머니 / 박형준 어머니 박형준 낮에 나온 반달, 나를 업고 피투성이 자갈길을 건너온 뭉툭하고 둥근 발톱이 혼자 사는 변두리 창가에 걸려 있다 하얗게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나가버린, 낮에 잘못 나온 반달이여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문학과지성사. 199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8.19
그리운 시냇가 / 장석남 그리운 시냇가 장석남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리 못하리 (『새떼들에게..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8.19
동백열차 / 송찬호 동백열차 송찬호 지금 여수 오동도는 동백이 만발하는 계절 동백 열차를 타고 꽃구경 가요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인 삼월의 신부와 함께 오동도, 그 푸른 동백섬을 사람들은 여수항의 눈동자라 일컫지요 우리 손을 잡고 그 푸른 눈동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요 그리고 그 눈부신 꽃..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8.18
강 / 황인숙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7.23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박철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수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셧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7.22
노숙 / 김사인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를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2013.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