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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감태준
바람에 몇번 뒤집힌 새는
바람 밑에서 놀고
겨울이오고
겨울 뒤에서 더 큰 겨울이 오고 있었다
"한번……"
우리 사는 바닷사 둥지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보자"
내가 아직 모르는 길 앞에서는
달려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때,
아버지는 바람에 묻혀
날로 조그맣게 멀어져가고, 멀어져가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는 온몸에 날개를 달고
날개 끝에 무거운 이별을 달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환한 달빛 속
첫눈이 와서 하얗게 누워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내 마음 한가운데
아직 누구도 날아가지 않은 하늘을 가로질러
우리는 어느새
먹물 속을 날고 있었다.
"조심해야, 애야"
앞에 가던 아버지가 먼저 발을 헛딛었다
발 헛딛은 자리,
서울이었다
(『마음이 불어가는 쪽』. 현대문학사. 1987)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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