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차가운 사랑 / 정세훈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7. 24. 17:25
728x90

 

차가운 사랑


―정세훈(1955∼)

 

 

차가운 사랑이
먼 숲을 뜨겁게 달굽니다 


어미 곰이 애지중지 침을 발라 기르던
새끼를 데리고 산딸기가 있는 먼 숲에 왔습니다
어린 새끼 산딸기를 따먹느라 어미를 잊었습니다
그 틈을 타 어미 곰
몰래 새끼 곁을 떠납니다
어미가 떠난 곳에
새끼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놓였습니다
버려야 할 때 버리는 것이
안아야 할 때 안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는 그 길이
새끼 앞에 먼 숲이 되어 있습니다
탯줄을 끊어 자궁 밖 세상으로 내놓던
걸음마를 배울 때 잡은 손을 놓아주던
차가운 사랑이
먼 숲을 울창하게 만듭니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55』(동아일보. 2013년 0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