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가을 저녁의 말 / 장석남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5. 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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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의 말

 

장석남

 

 

나뭇잎은 물든다 나뭇잎은 왜 떨어질까?
군불 때며 돌아보니 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꾸물대는 닭들


욱박질린 달이여


달이 떠서 어느 집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다
주소를 적어 접시에 담아 선반에 올려놓고


불을 때고 등을 지지고
배를 지지고 걸게 혼잣말하며
어둠을 지졌다


장마 때 쌓은 국방색 모래자루들
우두커니 삭고
모래는 두리번대며 흘러나온다
모래여
모래여
게으른 평화여


말벌들 잉잉대던 유리창에 낮은 자고
대신 뭇 별자리들 잉잉대는데
횃대에서 푸드덕이다 떨어지는 닭,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나뭇잎은 물든다

 

 


―시집『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