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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길목에서
정호순
가을날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시를 써서 야금야금 땅에 묻는 사람이 있었네
아는 이 알아주는 이 없이
아무도 모르게 홀로 쓰고 지웠네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
"바람도 없이 떨어지는 꽃잎같이 없어질 글을 쓰는 여자" 라고
자괴감이 우수에 젖어 늦은비 내리는데
병원에 입원한다는 짧은 쪽지 한 장 달랑 던지고
만추의 낙엽처럼 홀연히 사라진 사람
바람처럼 눈처럼 시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쪽지를 주고받은
색깔도 음색도 알 수 없는 사람
떨어진 꽃잎처럼 땅에 스며든 빗물처럼
멈춰진 공간 속에 정지되어있는 사람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 이 가을
문득 생각나 탐문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리산 골짝 어디쯤 요양중이라 했는데
홀로 낯선 곳 먼 여행을 떠났다 온 것처럼
아무 일 없었던 듯 제 자리로 다시 돌아 와
계곡을 적시는 청정수처럼
맑고 깨끗한
시를 쓰면 좋겠네
⸺계간『詩하늘/통권 103호』(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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