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원고

광속구 ―2020~2021 봄 /정호순(계간『詩하늘 101』(2021년 봄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3. 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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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속구

  ―2020~2021 봄

 

  정호순

 

 

  새순이 움트기도 전 새봄은 몹쓸 꿈으로 지구촌을 덮쳐 왔다

 

  정체불명의 미사일 삽시간에 대한민국 세계 곳곳, 지구촌을 점령했다

 

  어느 전쟁이 이보다 속전속결이었던가

  병사의 군홧발로는 밟을 수 없는 속사포

  총알보다 빠른 광속으로 지구의 한 도시 도시를 농무처럼 장악하기 시작했다

 

  냄새도 형태도 없는, 맛도 생각도 이데올로기 이념도 없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저격과 무차별 포격만 있을 뿐

  폐가의 뜬소문처럼 괴담이 흉흉하다

 

  만지지 마라, 붙지 마라

  누구도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없는

  너도나도 표적이 되고 과녁이 될 수 있는 지금

  단순 타박상도 한 번 맞으면 족히 보름을 간다는

  저 괴물 투수의 광속구

  3루도 2루도 1루도 피난처가 될 수 없는, 홈으로 도루하는 포수의 마지노선

 

  기침, 재채기, 악수하는 것조차 어색한

  타이거마스크가 점령하고 있는 거리, 부디 조심 또 조심하시라

 

 

 

⸺계간『詩하늘 101』(202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