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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입니다
원춘옥
밥상에 앉은 다혈질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숨 죽은 콩나물처럼, 시금치처럼 여자는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임”이라고 눈으로 쓴다 밥상에 앉은 남자가 여자를 쏘아본다 여자는 묵묵히 사골 찜솥을 준비한다 이 국물만 고아 내면 서로의 간도 맞는 맞춤형이 되겠지 남자는 양푼 가득 마늘을 담아와 까기 시작한다 매운 냄새가 서로의 관계처럼 자극한다 남자도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임” 집안 분위기로 쓴다 누가 초식형이었는지 누가 육식형이었는지 알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는 깐 마늘만 수북이 쌓여있는
―시집「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입니다」(상상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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