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미루나무 각시 /이연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3. 3. 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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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 각시 

 

이연숙

 

 

여우 꼬리만큼 작은 햇살을 품고 있는 내 등에

그녀가 내게로 와서

보드라운 체온 던지며 눈 감고 서 있다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그녀의 슬픔이

나를 투과해

강물 위에 널어놓은 듯 물 위에 결이 생긴다

 

지나다 그녀는 불쑥

나를 찾곤 한다

느닷없이 불현듯 기습처럼

네가 그리웠어, 라며 허겁지겁 나를 안는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나를 찾아온 적도 있다

강둑에 선 친구들이 와 와하며 떠내려가는

유빙(流氷)에 소란스러울 적에도

마치 혼자 온 것처럼 저만치 서 있었다

 

잎 달고 잎 떨구고

잎 달고 잎 떨구고

그렇게 나 홀로 세월을 펄럭일 동안에도

그녀의 눈길은 늘 저 어디쯤

빈 곳을 보고 있다

 

차라리 그녀

내 곁 한 그루 나무로 세워졌으면

 

 

 

―『시와소금』(2023,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