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뒤집힌 거북이 보면 도와줘야 할까요 /박세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3. 6. 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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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거북이 보면 도와줘야 할까요

박세랑


   오빤 나한테 기분 풀라면서 소 곱창을 사줬어 전직 대통령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식당이래 고작 3인분밖에 못 먹었는데 이십만 원이 훌쩍 넘었어 멱살 잡고 짤짤 흔들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어 이 돈이면 오천 원짜리 김밥이 몇 줄이야 밀린 가스비도 3달 치나 갚고 통신비에 관리비에 아, 몰라 몰라 구질구질하게 가성비나 따져대는 내 위장은 자꾸 약해져서 사람 구실도 못 하겠는데 소 곱창은 질긴 고무줄처럼 도통 소화가 안 되고 짝퉁인지 진퉁인지 롤렉스가 번쩍이는 너보단 내가 더 많이 집어먹어야 직성이 풀리겠는데 몸도 영혼도 다단계에 저당 잡힌 엄마가 자취방에 들이닥친 지 이틀째 되던 날, 기숙사 살던 남동생이 방학이라 오갈 데가 없다며 문을 두드렸어 세 살 터울 언니가 직장에서 재계약 안 됐다며 들이닥쳤어 머리맡엔 굽 떨어진 샌들이랑 비에 젖은 운동화랑 엄마의 날강날강한 단화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쌓여 있는데 싱크대 앞에서 불어터진 라면을 허겁지겁 건져 먹다 벌레 잡을 타이밍을 놓쳐버렸어 엄마랑 동생이랑 짜파게티를 눈치 없이 세 개나 끓여 먹고 설거지도 안 했어 언니는 화장실에서 앞머리 파마를 해대느라 종일 약 냄새를 풍겨대는데 내 치부를 길바닥에 펼쳐 놓고 자, 자, 두 장에 팔천 원 동네방네 팔러 가기엔 장사도 이젠 끝물인데 그러니까 오늘은 있잖아 오빠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 야야 간 보지 좀 말고 굽는 대로 빨리 처먹고 너희 집으로 썩 꺼지라고 칼같이 선을 긋는 저놈을 삼킬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에 쟤가 나보다 곱창을 세 조각이나 더 처먹었어



ㅡ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웹진》 (2023,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