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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이돈형
헌 집 같은 의자에 앉아
헌 집에 든 바람 같은 아버지가 담배를 태우신다
어쩌다
또 한 대 태우신다
공복에 태우는 담배 맛은 정든 소멸처럼 애태움을 가시게 해
내뿜는 연기가 생의 뒷주머니 같은 골목에 퍼지다 종일 담벼락을 옮겨 다니며 중얼거린 의자의 그림자에 가 앉는다
어쩌다 하루란 게 있어
의자는 허虛의 혈穴을 찾아 하루치 삭고 아버지는 하루치 삶을 개어놓는다
어둑한 골목의 기색을 덮고 있는 두 그림자 위로 석양이 쇳물처럼 쏟아진다 아무데서나 문드러지기 좋은 저녁
아버지 의자에 앉아 소멸만 내뿜는다
내뿜어도 자꾸 생을 일러바치듯 달라붙는 정든 소멸은 무얼까?
아버지, 담배 맛이 그리 좋아요?
ㅡ반년간 《상상인》(2023, 1월), 제3회 선경문학상 수상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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