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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어디에 있나
김기택
아침에 들렸던 개 짖는 소리가
밤 깊은 지금까지 들린다
아파트 단지 모든 길과 계단을
숨도 안 쉬고 내달릴 것 같은 힘으로
종일 안 먹고 안 자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슬픔으로
울음을 가둔 벽을 들이받고 있다
아파트 창문은 촘촘하고 다닥다닥해서
그 창문이 그 창문 같아서
어저께도 그저께도 그그저께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주민들 같아서
울음이 귓구멍마다 다 돌아다녀도
개는 들키지 않는다
창문은 많아도 사람은 안 보이는 곳
잊어버린 도어록 번호 같은 벽이
사람들을 꼭꼭 숨기고 열어주지 않는 곳
짖어대는 개는 어느 집에도 없고
아무리 찾아도 개 주인은 없고
짖는 소리만 혼자 이 집에서 뛰쳐나와
저 집에서 부딪히고 있다
벽 안에 숨어 있던 희고 궁금한 얼굴들이
베란다에 나와 갸웃하는데
어디서 삼삼오오가 나타나 수군거리는데
흥분한 목소리는 경비와 다투는데
울음소리만 혼자 미쳐 날뛰게 놔두고
아파트 모든 벽들이 대신 울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
―시집『낫이라는 칼』(문학과지성,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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