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아침
최문자
가끔 ‘정의’ 라는 말
두꺼운 텍스트 속에서 읽는다
내게 시간이 잘 도착하는 시계가 있다
내것 아닌 감정으로 시계는 가고 있다 나는 그 때 일을 시계에게
말하려고 했다
시계의 얼굴이 하얗다 질려있다
내가 나쁜 손을 잡으면 시계가 죽었다
나를 발견하듯이 깜짝 놀라며 시계를 발견한다
시계를 들여다 본다
12시였다
지난 토요일도 시계는 한 번 죽었었다
죽음 후, 숫자 1에서 12개의 뼈가 휘어져 있다
숫자 2는 1을 떠안고 까마득한 자전의 길을 떠난다 네가 나였으면
좋겠어, 네가 그 냥 너였으면 좋겠어 두 가지 감정의 바늘이 갈길
가면서 정하지 못하고 있다
숫자 1과 숫자2 사이 좁은 허공에서 조금 늦거나 조금 빠른 시간이
웃고 또 웃는다 한때 나는 자주 웃던 무례한 시계를 강변에 버렸다
시계를 고치러 간다
이번 여름에도 슬쩍슬쩍 나를 지나가던 시계의 죽음
죽음이란 말은 어느 지붕 밑에서 우연히 자다가 깨어난 참새처럼
어감이 부스스하다
건물 담벼락에 ‘정의’ 라고 쓰고 밑줄까지 긋던 흰민들레 한 송이 같
던 제자가 갑자기 떠오른다
가끔 그들의 ‘정의’ 는 장미꽃 장면으로 팬스를 넘고 새콤달콤한 체
리쥬스를 찍어 편지를 써보낸다 선생님, 들립니까 들립니까? 잠깐 시
계 안에 있다가 바로 시계 밖으로 나간 이 실종을 친구야, 어찌하니?
그 많은 민들레가 앉을 의자들이 텅텅 비어있다
거짓말에게서 흰 가루약의 정체가 밝혀진다 해도
꽃 같은 시간 몇 개가 흐린 연필 끝으로 꽃을 그려준다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랑에나 빠질까봐
6이 9가 되는 무분별한 경우처럼
그가 정의롭다는 말
그가 정오를 사랑한다는 말
너를 만지다 나를 만지고 끝으로 마른 흰 수건 끝을 만진다
이 아침 나는
시계를 찾으러 간다
―월간『현대시』(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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