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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하재일 |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3. 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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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봉 올라서야 만난 해연풍 적막한 가슴을 적시고…
저멀리엔 한라산… 발밑엔 초록의 광장
진홍같은 다홍 이파리의 양귀비 꽃밭
관능과 슬픔을 태워 올리는 빛과 같아
  • 성산 일출봉에서 내려다 본 우도. 푸르고 넓은 아득한 바다에 소 한 마리가 엎드려 턱을 괴고 먼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형상이다.
    창해(蒼海)의 소 한 마리, 우도(牛島). 지난번 이생진 시인의 성산포 편에서는 바라보기만 했던 그 섬 우도에 어렵게 발을 디뎠다. 다시 제주 올레 위에 서게 됐고, 그 길에 꼭 걸어보고 싶었던 그 섬으로 홀로 스며든 것이다. 이번 회는 특정 시인의 시가 아닌, 우도와 우도를 다룬 시가 중심이다. 창해의 소, 그이가 주인공이다. 이 섬의 이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도’ 말고는 다른 이름을 붙이기 어려웠을 성싶다. 누가 보아도 영락없이 소 한 마리가 엎드려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형상인데, 놈(년)의 머리는 현해탄 너머 멀리 태평양 쪽을 향해 있다.

    “물에 넘어진 사람들의 유족은/ 물이 원수이겠지만/ 내 앞의 창해는/ 소 한 마리 누워 있는 풀밭/ 꼬리치는 대로/ 흰 나비 하나/ 날아갔다 날아온다”(이생진, ‘풀밭에 누운 우도’)

    ◇우도봉에서 성산 일출봉 쪽을 내려다 본 풍경. 초록의 잔디 광장 전면에 죽은 자들의 집이 늘어서 있고, 그 아래에는 붉은 꽃양귀비들이 산자의 관능을 위태롭게 과시하고 있다.
    망망한 풀밭에 소 한 마리 누워 있고, 녀석의 꼬리가 흔들리는 방향을 따라 흰 나비 하나 오간다고 시인은 썼다. 길게 엎드려 턱을 괴고 먼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는 모양새는 한가롭지만 청량한 우수가 느껴진다. 왜 저 창해의 평화 앞에서 서글퍼질까. 비바람 몰아치고 눈보라 날리는 진창을 걷고 걸어 아늑한 집 따뜻한 구들목에 누웠을 때 비로소 흘리는 눈물 같은 것인가. 성산포에서 배를 타고 천진항으로 갔다. 소의 머리에서 약간 내려와 목줄기쯤에 해당되는 포구다. 배에서 내려 그놈의 꼬리 쪽을 향해 왼쪽으로 해안 길을 따라 걸어가 반대쪽 옆구리와 목을 따라 머리 위까지 올라갔다가 서서히 내려와 천진항으로 복귀하는, 6시간 동안 대략 16㎞ 걷는 여정이다. 지난 5월 말 개장한 우도 올레 코스이기도 하다.

    배에서 내려 홀로 남았다. 포구 앞에 늘어놓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빌리거나 관광버스를 타고 방문객들은 모두 떠났다. 홀로 남아 시멘트로 포장된 일주도로를 땡볕 아래 걸을 일이 설핏 막막하다. 걸어야 한다. 걷는다. 걷지 않고서야 이 짐승의 되새김질을, 그네의 ‘숨비소리’를 잡을 수 없다. 천진항에서 하우목동항 쪽으로 걸어가는데 ‘해녀 탈의실’이 잊을 만하면 눈에 띈다. 시멘트로 단출하게 지어진 그 탈의실 안팎에서는 노파들이 모여 해초를 다듬는 단순작업에 몰두하는 중이다. 바다로 걸어들어가는 검은 해녀복의 여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산물통 해녀촌이다.

    남정네들은 뭍에서 길가에 널어놓은 해초를 뒤집거나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는 일이 전부다. 아니, 더 걷다 보니 경운기를 끌고 바닷가에 바짝 다가가 해녀들이 뭍으로 던지는 해초를 그물망에 포장해 싣는 일도 한다. 길가에서 해초를 뒤적이며 말리는 남정네에게 바다 밑 잡초라도 제거하는 중이냐고 물었다. 귀한 해초라면 경운기까지 동원해서 퍼 나를 만큼 많지는 않을 터이다. 그 초로의 남정네는 ‘도박’이라는 해초를 요 며칠 사이 한참 따 올리는 중이라고 했다. 도박이라는 이름이 생소해 거듭 물었었더니 사내는 “화투 칠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그 해초 이름이 도박이라는 게 맞다는 걸 알겠다. 도박은 도배하는 ‘풀’의 원료로 사용된다는 것인데, 하루에 해녀들이 평균 60㎏은 건져내 8만원 소득을 올리고, 능숙한 해녀는 100㎏까지 거두어낸다고 했다. 

    제주의 여인들은 차고 거친 바닷속에 들어가 평생 물질을 하고 제주의 남정네는 고기잡이 배 위에 머무르지 않는 한 뭍에서 하냥 백수처럼 세월을 죽인다. 여인네들이 거두어 올린 도박을 말리던 그 남정네는 흔연한 표정으로 이방인의 질문에 열심히 답했다. 그의 친절하고 지루한 표정에서 얼핏 페미니즘에 동조했던 심정을 거두어들이고 싶었다. 그는 아프고 힘들어 보였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고, 차라리 건강한 노동이야말로 살아 있는 것들의 행복이었다. 안타깝게도, 말할 때마다 입가에 작은 기포가 생기는 그 늙은 사내에게 더 이상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여력은 없어 보였다. 푸른 물 속에서 유영하다 때때로 숨비소리를 내는 여인들의 노동이 차라리 부러웠다.

    “옛노래는 누가 지었는지 모르고 노래만 남아 있다./ 저녁 풀밭이 말라서 비린 풀 냄새가 일어나고/ 처음부터 말떼는 조심스럽게 돌아온다./ 여러 산들은 제가끔 노을을 받아 혹은 가깝고 혹은 멀다./ 또한 마을처녀가 밭에서 숨지는 햇살을 가장 넓은 등에 받고/ 이 고장에서 자라 이 고장에서 시집갈 일밖에는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어제의 뭉게구름이 그토록 아름다웠을지라도/ 그 구름은 오늘 바라볼 수 없으며 벌은 날아가다 죽는다./ 이 땅에 묻힌 옛피가 하루하루를 그들에게 가르치며…”(고은, ‘해연풍’ 부분)

    해연풍(海軟風)이란, 바다에서 육지로 불어오는 바람을 일컫는 말이다. 고은 시인이 질풍노도의 시절 자살까지 시도했던 제주 바다에 와서 해연풍을 가슴에 품어 시를 썼다. 산물통 해녀촌을 지나 우도올레의 반환점에 해당하는 하고수동해수욕장(허기에 지쳐 걷다가 주저앉고 싶었는데 이곳에서 뭍에서 나는 다슬기와 비슷한 ‘보말’이라는, 바닷가 바위에 붙은 작은 조개를 으깨어 끓여낸 초록 칼국수를 해광식당에서 먹었다. 식당 주인 아낙은 마산 출신으로 부산에서 우도 출신 남자를 만나 스물세 살에 아이를 낳고 이곳에 어쩔 수 없이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눈물바람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섬 바깥에 나가면 더 어지럽고 무섭다고 했다.)을 거쳐 바다를 배경으로 돌담이 두겹 세겹 지그재그 형태를 이루고 있는 밭들을 바닷가 쪽으로 내려다보며 걸어갔다. 해연풍은 불지 않았고 땡볕은 오전보다 더 따가웠다.

    “저 저녁 바다로 떠나지 않고 밭에서 돌아온 자여, 맞이하라./ 비로소 해연풍(海軟風)은 노는 애들과 그대 적막한 가슴 앞을 적시고/ 이 고장의 질긴 협죽도(夾竹桃)꽃들을 마지막에 적시리라./ 어느 돌담 앞에나 옛 노래인 양 감태 잎새와 소라 껍데기가 있어도/ 가장 풍요한 빈 손으로 이 땅을 떠나지 않게 하고/ 저 깊은 밤 바다 위에서는 이미 별이 빛나기 시작하며/ 어여쁜 갈치 아씨가 잡혀 하느님처럼 실려 오리라./ 밤은 알리라. 더구나 저 바다의 밤은 알고 있으리라./ 어제는 사시나무였고 오늘은 마른 살 가죽에서 저물고/ 비로소 해연풍은 아득한 밤배 불빛을 씻어 오리라.”(고은, ‘해연풍’ 부분)

    바닷가 돌담 아래 밭에서 노파가 홀로 숙지근히 작업에 몰두하는 중이다. 걷는 내내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 터에, 그 바닷가 돌담 아래에서마저 노파 홀로 고개를 묻고 있어 우도는 걷고 걸어도 속을 내보이지 않는 매정한, 소 같은 섬이었다. 고은 시인은 “저 저녁 바다로 떠나지 않고 밭에서 돌아온 자여, 맞이하라./ 비로소 해연풍(海軟風)은 노는 애들과 그대 적막한 가슴을 적시고”라고 노래했지만, 땡볕 가득한 오후의 섬에 해연풍은 여전히 불지 않았다.

    해연풍은 소 머리, 우도봉에 올랐을 때 비로소 왔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모든 수고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이 짐승은 그의 머리에 올라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한라산이 희미하게 배경으로 보이는데 발밑으로 초록의 광장이 열려 있고, 광장 끝 부분에는 우도의 죽은 자들이 줄을 지어 누워 있다. 죽은 자들 건너편 성산포에서 출발한 연락선이 바다 가운데 떠 있다. 우도에서도 누군가는 당연히 죽을 터이다. 죽은 자들은 땅에 묻히거나 산골되어 바람에 흩어질 터인데, 미처 우도에서 그들의 거처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름다운 것만 보려는, 살아 있는 자의 이기적인 관성 때문일 것이다.

    죽은 자들의 광장 아래편으로 꽃양귀비밭이 장관이다. 흔히 양귀비를 미인으로 비유하거니와, 그 미인의 이미지란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립스틱 짙게 바른 상투적이고 천박한 미인의 전형으로 내 머릿속에는 각인돼 있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으로 살아 있는 양귀비를 접한 우도봉 아래 무덤 곁에서 사실 나는 전율했고, 오랫동안 그 꽃밭을 떠나지 못해 서성거리며 쉼 없이 셔터를 눌렀다. 하늘거리는 붉은 듯 엷은 색조의, 진홍 같은 다홍의 이파리들은 내 가슴을 서늘하게 움켜쥐었다. 그리하여 그 우도봉 양귀비 옆 무덤밭의 죽음은 청량하고 부드러웠으며 가볍고 맑았다.

    “다가서면 관능이고/ 물러서면 슬픔이다./ 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 것./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된다./ 다가서면 눈멀고/ 물러서면 어두운 사랑처럼/ 활활/ 타오르는 꽃./ 아름다움은/ 관능과 슬픔이 태워 올리는/ 빛이다.”(오세영, ‘양귀비꽃’)

    하재일 시인이 ‘우도바다’라는 긴 시편에서 “간혹 우도의 바닷가에서 사람들은/ 일없이 오래 머물러 있으려 하지만/ 자칫하면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고 썼듯이, 빨리 이 섬을 벗어나는 게 살려는 자들에게는 화급하다. 더 머무르다 보면, 적어도 우도봉에서는 죽음이 맞춤옷처럼 편안해진다. 성산봉과 바다와 초록광장을 굽어보는 그 로열석을 예약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하재일 연보
    ●1961년 충남 보령 출생,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1984년 월간 ‘불교사상’ 만해 시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 ‘선운사 골짜기 박봉진 처사네 농막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그늘’ ‘달팽이가 기어간 자리는 왜 은빛으로 빛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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