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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22> 강정의 ‘노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4. 1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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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22> 강정의 ‘노래’
늘 장신구처럼 따라다니는 죽음
폭발적인 내압이 최고조에 다다른 강정의 시들은 하나같이 독하다
  • 길 위에서 1년 가까이 시를 읽어오는 동안 처음으로 서울 도심에서 시인을 만났다. 그것도 청춘들이 넘치는 홍대 입구에서, ‘미래파’의 원조라는 ‘젊은’ 시인 강정을 만났다. 그의 나이가 우리네 세는 나이로 마흔에 이르렀으니 젊다고 말하는 건 어폐가 따르지만, 시만 본다면 그는 분명 젊은 축에 속한다. 젊다는 기준에 토를 달 수도 있는데, ‘따뜻하고 보드라운’ 서정이 아니라 전위적이고 독한 서정을 추구하는 시인을 보다 젊은 축으로 분류하는 걸 관용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동의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홍대 인근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섰을 때 강정 시인의 얼굴 위로 강렬한 석양이 들이쳤다. 물기를 머금은 ‘낯선 짐승’의 눈빛이 선명하다.
    사실 이런 식의 기준은 속되다. 젊다고 다 전위적인 건 아니고, 늙었다고 늘 보드라운 것만은 아니니까. 젊고 늙은 것을 떠나 결국 모든 예술의 함량을 따지는 척도는 세상과 인간을 마주하는 치열한 자세일 게다. 그날 얼어붙은 홍대 입구에서 만난 강정은 이런 식의 측량 게이지 눈금이 무용했다. 우리에서 뛰쳐나오긴 했는데 사방이 낯설어 어찌할 줄 모르는 짐승의 눈을 그는 번득이고 있었다. 그냥 볼 때는 미처 몰랐는데 파인더 속에 클로즈업된 눈빛이 그랬다. 석양 속에 물기를 머금은 그의 눈빛에서는 폭발 직전의 무언가 보였다. 눈빛만 그러한 게 아니라 그가 쓰는 시들도 대부분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

    ◇젊은 청춘들의 거리 홍대 부근을 걸어가는 강정 시인. 록밴드의 리드보컬이기도 한 그는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친구가 운영하는 인근 스튜디오에서 노래 연습을 한다.
    “숨을 뱉다 말고 오래 쉬다보면 몸 안의 푸른 공기가 보여요/ 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도 있어요/ 술 담배를 끊으려고 마세요/ 오염투성이 삶을 그대로 뱉으면 전깃줄과 대화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뜯어먹은 책들이 통째로 나무로 변해/ 한 호흡에 하늘까지 뻗어갈지도 몰라요/ 아, 사랑에 빠지셨다구요?/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고 하지 마세요/ 숨이 턱턱 막히고 괄약근이 딴딴해지는 건/ 당신의 사랑이 몸 안에서 늙은 기생충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저 깃발처럼/ 바람 없이도 저 혼자 춤추는 무국적의 백기처럼, 그럼요 그저 쉬세요/ 즐거워 죽을 수 있도록”(‘노래’)

    그는 왜 이 시에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즐거워 죽을 수’ 있는 경지란, 목청껏 노래를 부를 때 말고는 쉬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는 록밴드의 리드보컬로도 살고 있다. ‘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마다 그는 ‘오염투성이 삶’을 노래로 토해내는 건가. 추운 거리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그의 친구가 운영한다는 인근 녹음스튜디오로 갔다. 마침 해가 넘어가면서 강렬한 빛을 5층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 창문으로 뿌려대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에게 노래를 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심한 감기로 기침을 겨우 참는 형국이었으니, 노래는 애초에 무리였다. 게다가 청중도 단 한 명뿐이니 신명이 발동될 리 없었다.

    그는 자신이 늘 세상의 부적응자였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더 심했는데 초등학교 때는 선생이 발표를 시키면 그냥 울어버렸다고 했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는데 할머니가 한 살 위의 형에게는 엄했어도 자신에게는 자애로웠다. 사랑은 모자라도 넘쳐도 늘 문제다. 부산에서 태어나 바로 서울에 올라와 말을 배운 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다시 부산으로 갔다가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와 중학교를 마치고 다시 부산에 내려가 고등학교를 다녔다. 여러 곳에 늘 적응을 해야 했으니 붙박이로 성장한 아이들에 비해 사람 속을 읽는 건 빨라졌을 수도 있겠다고 했다. 부친이 건축업에 종사했는데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몰락한 이후로 재기를 못하는 바람에 내내 가난 속에서 살았다.

    “어젯밤엔 집으로 돌아가던 나의 그림자가 죽었다/ 문지방 앞에서 흘러내린 어둠엔 꽃냄새가 가득했다/ 달의 뒤편으로 추락하던 지구가 새로운 별을 임신했다/ 창가에 남아 있던 냉기가 시간의 한 틈을 쪼개었다/ 문득 별이 터지니 죽은 내 얼굴이 해바라기처럼 웃었다/ 십년 전의 벚꽃들이 폭약처럼 터졌다/ 이제 나는 슬프지 않을 거야, 라고 노래 부르며/ 한 아이가 문 밖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낡고 메마른 굴렁쇠가 수평선 바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아침의 시작’)

    ‘이제 나는 슬프지 않을 거’라고 되뇌던 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유일하게 공부라는 걸 해보았다는 재수 시기를 거쳐 추계예대 문창과에 들어가 2학년 때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시단에 나왔다. 1996년 첫 시집 ‘처형극장’을 내고 난 뒤 그는 엄청나게 방황했다고 했다. 뒤늦게 눈 밝은 평자들이 “이 시집 하나로 강정은 우뚝한 시인”이라며 상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는 당시 “시집이라고 내놓았는데 세상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게다가 뒤이어 나라는 구제금융 사태 속으로 깊숙이 빨려들어갔고 그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던 시 쓰기가 허무해져버렸다. 방황이 꽤 길기는 했지만 그는 천생 시와 떨어져 살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병든 죽음과 병들지 않은/ 삶 사이에서 한 올의 실수도 섞이지 않은/ 바람이 분다 청춘은 죽음을 놓지를 않고/ 죽음은 끊임없이 청춘 위에 천장마냥 드높은데/ 폐품처럼 나의 청춘이 부스럭거리면서/ 이곳이 지옥이야, 아무거나 덮고 꿈꾸어도 발/ 밑에 수천 개의 신천옹 새끼들이 편대로 꺼져드누나/ …/ 나는 노래의 끝의 가장 깊숙한 지평선으로 잠행한다/ 태양이 반쯤 산발한 혓바닥을 꽂은 거기에/ 땅위로 솟은 나머지 절반이 아직도 하늘보다 할 말이 많은/ 세계의 끝을 빨아들이는”(‘지하생활자의 시’ 부분)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패러디한 제목에 알 수 있듯이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의 청춘은 늘 죽음의 이미지를 거느린다. 강정의 시에서 죽음은 늘 장신구처럼 따라다닌다. 세 번째 시집 ‘키스’의 서두와 끝을 열고 닫는 시도 “…땅속에 덮이는 하늘/ 맨발로 뛰쳐나가 생의 지도를 다시 찍으니/ 펄럭이는 파도 끝자락에 마지막 詩가 불붙는” ‘사후(死後)의 바람’이다. 그는 심지어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수천 번 죽음을 노래했건만/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게 이상하다”(‘불안스런 것들’)고까지 읊조린다. ‘지하생활자의 시’에서는 “땅 속에 갇혀도 살아내는 힘이 죽음”이라고 설파했는데, 그가 받아들이는 죽음의 진짜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그는 정작 죽음에 대해서 특별하게 생각하거나 의미를 부여하거나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첫 시집을 낼 무렵이나 지금이나 하나의 뿌리 깊은 인식의 토대 정도로 여기고 있으며 모종의 시적 테마로 설정했던 것도 아니라고 물러섰다. 그저 매순간 어떤 황홀이나 쾌락이나 고통 등이 느껴질 때 죽음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실질적 체감이 있었을 뿐 그걸 한정된 단어, 한정된 감각으로 언어화하자니 죽음이란 단어가 부지불식 반복됐던 것 같다는 것이다. 그냥 하나의 에너지 과잉, 홧병에서 신명으로 넘어가는 물리적 상태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연 그러한가.

    “팔다리가 묶여 있습니다/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꿈을 꾼다는 건 얼마나 지독한 자유인가요/ 나는 이곳에서 죽으렵니다/ 여기는 그림자에게 육체를 불어넣는 공장/ 눈, 코, 입 그리고 생식기가 없는 사람들/ 아랫도리에 심장 같은 불길이 반짝여요/ 바깥에는 얼마나 뜨거운 태양이 타고 있을까요”(‘처형극장’ 부분)

    강정의 시들은 하나같이 독하다. 폭발 직전의 내압이 초고조에 도달해 있다. 그의 시들을 미래파의 원조로 분류하면서 젊은 시인들의 난해한 어법이 그에게서 비롯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정작 그의 시들에서는 ‘독한 서정’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모든 시는 다 서정시”라고 짧게 응수했다. 그는 “‘서정’이라고 규정지으면서 논의되는 인간의 감정과 심상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너무 많다”면서 “따뜻하고 보드랍고 잔잔한 것만 서정이 아니다”고 부연했다. 극명한 냉온 사이에서 요동치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요동질 자체를 언어로 토로하는 게 시적 서정 내지는 서정의 양식화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혼자 있을 때 지금도 자주 운다고 했다. 가끔씩 울어주어야 무언가 해갈이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울 때가 되면 음악 하나 듣고도, 혹은 집안 일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그런 느낌을 조장한다고 했다. 뭔가 명징하게 보이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슬퍼진다고 했다.

    말미에 우리는 결국 노래방에 갔고 그의 가창은 매력적이었다. 로커들이 그렇듯이 그의 목소리도 허스키한 편이었는데 이빨 사이로 바람이 새는 듯한 그만의 성음은 슬픔을 녹여내기에 적합했다. 그가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을 불렀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홍대 입구 부근에서 아직 혼자 자취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그에게 5년 전쯤 지독한 사랑이 지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자신이 도망쳤노라고 했다. 나름대로 죄어주는 게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 같은 느낌이긴 한데, 정작 조여져 있는 순간에는 직장이든 여자로부터든 도망가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약간 탈레반스러운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그가 낯선 짐승의 표정으로 말했다.

    “냄새로 사물을 식별하는 건 비단 네 발 짐승의 장기만이 아니다/ 지워진 너의 냄새가 사방 분분한 낙엽의 마지막 숨결에서 배어나온다/ 이 친밀도 높은 인분의 기척을 나는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전망으로 읽는다/ 인간이 사랑을 멈추지 않는 까닭은/ 이미 퇴화한 감각에 대한 질긴 향수 때문이다”(‘낯선 짐승의 시간’ 부분)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노래

                                                                                                    강정 
      
      숨을 뱉다 말고 오래 쉬다 보면 몸 안의 푸른 공기가 보여요
      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도 있어요
      술 담배를 끊으려고 마세요
      오염투성이 삶을 그대로 뱉으면 전깃줄과 대화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뜯어먹은 책들이 통째로 나무로 변해
      한 호흡에 하늘까지 뻗어갈지도 몰라요
      아, 사랑에 빠지셨다구요?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고 하지 마세요
      숨이 턱턱 막히고 괄약근이 딴딴해지는 건
      당신의 사랑이 몸 안에서 늙은 기생충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저 깃발처럼
      바람 없이도 저 혼자 춤추는 무국적의 백기처럼, 그럼요 그저 쉬세요
      즐거워 죽을 수 있도록

      ■강정 연보
    ●1971년 부산 출생,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2년 계간 ‘현대시세계’ 가을호에 ‘항구’ 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침소밴드 리드보컬
    ●시집 ‘처형극장’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키스’, 산문집 ‘루트와 코드’ ‘나쁜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