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네 줄에 압축된 닭의 '모든 것'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
(1937)
- ▲ 일러스트 윤종태
이보다 더 간결할 수 있을까. 단 네 줄로 닭의 모든 것이 표현되고 있다. 닭은 물 한 모금 마시고 고개 한 번 들고, 또 물 한 모금 마시고 고개 한 번 든다. 닭이 물을 마시는 이 무심한 행동을 강소천은 무심히 보지 않고 '순간 포착'했다. 그리고 거기에 슬쩍 '하늘'과 '구름'을 집어넣었다. 닭이 물 한 모금 마시고 고개 한 번 드는 것은 하늘과 구름을 보기 위해서라는 것. 이 순간, 시가 탄생했다. 바로 이 시다.
아마도 강소천(1915~1963)에게는 대상의 순간 포착력과 시적 압축에 대한 신념이 있었던 듯하다. "달밤/ 보름달 밤// 우리 집 새하얀 담벽에/ 달님이 곱게 그려 놓은/ 나무// 나뭇가지."(〈달〉) '달밤'에서 시작해 '나뭇가지'로 끝을 맺은 이 시에서도 우리는 강소천의 압축미에 대한 강박을 본다. 보름달이 세상을 훤하게 비추는 밤, 시인은 이 황홀한 '순간'을 '달'에게 바친다. 그러나 달뿐이었다면 이 시의 시적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졌을 것이다. 달은 '흰벽에 그려진 나무 그림자'가 있어 비로소 그 마술적 매력을 배가시키게 된다.
"아기는 술래/ 나비야, 달아나라.// 조그만 꼬까신이 아장아장/ 나비를 쫓아가면// 나비는 훠얼훨/ "요걸 못 잡아?"// 아기는 숨이 차서/ 풀밭에 그만 주저앉는다// "아가야,/ 내가 나비를 잡아 줄까?"// 길섶의 민들레가/ 방긋 웃는다."(〈아기와 나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시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아장아장 나비를 쫓는 아기와 그 아기를 따돌리며 도망가는 나비를 포착한 뒤, 거기에 은근슬쩍 길섶의 '민들레'를 끼워 넣었다. 이 민들레가 없었다면 아기와 나비의 쫓고 쫓김 역시 밋밋했을 수도 있다.
김요섭, 박홍근, 최계락, 신지식, 최요섭 등에게 수여된 '소천아동문학상'의 영예가 이야기하듯 강소천이 우리 아동문학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꿈을 찍는 사진관〉을 비롯하여 수십여권에 이르는 동화책의 저자이자 200여편의 동시를 생산한 시인으로서 그는 50·60년대 우리 문학의 중심축이었다. 특히 함경남도 고원이 고향인 그의 활약은 장수철(평양), 박경종(함남), 박홍근(함북), 박화목(황해도) 등 전쟁 이후 북쪽에서 월남해온 문인들의 작품 활동과 더불어 전후 아동문학계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대공원에 〈닭〉을 새긴 '강소천문학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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