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법 강의 (4)
시적 표현
시가 문학예술로서 성립하기 위한 첫째 조건으로서 시적인 표현을 들 수 있습니다. 시가 시적인 표현을 획득하지 않았을 때는 비록 시의 모습을 갖추었다 해도 그것은 시로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를 감각적 특수성 혹은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연속체로 보는 것입니다. 이 점이 시를 음악과 회화에 연결시키며, 철학과 과학에서 분리시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시를 비유법의 세계로 보는 것입니다. 이 점이 시를 간접적 담화의 세계라고 주장케 하며, 또한 은유와 환유를 통해 말해지는 세계임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휠라이트의 표현에 따르면 기호(sign)이면서 대상(object)이며, 비서술적 유형으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시를 하나의 주체에서 분리된 객체로 본다는 말이며, 상호주관성의 세계라고 부릅니다.
시적 표현을 획득 할 수 있는 요건으로 세 가지 기본적인 틀이 있습니다.
그것은 (1)율격 (2)허구성 (3) 언어의 비유적 사용이 그것입니다.
가) 율격 (metre)
율격은 律 즉 <운율>과 格, 즉 <품격>으로 이룩된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운율이라고 함은 리듬, 흐름을 나타냅니다. 시는 노래를 전제로 만들어진 형태이므로 노래로 쉽게 불리워지는 흐름을 지니는 것을 뜻합니다. 운율은 내재율과 외재율로 나뉘며 외재율로는 7,5조나 4,4조를 기본 틀로 하는 소월의 시나 청록파의 시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며 내재율은 외형적인 모습에서 찾아 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쫓아가며 개성적인 흐름을 담고 있는 형태를 말합니다. 요즘의 자유시에서는 운율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일정한 감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운율을 가지지 않는 것보다 운율을 지님으로서 더 쉽게 전달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운율이 있다고 다 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시로서 갖추어야 할 격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요건은 바로 자신의 작품에 얼마만큼의 격을 불어넣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는 먼저 율격을 제일 중시하는 것입니다.
밤이 낮을 먹습니다
설겆이 합니다
어둠이 사라집니다
아직은 채워지지 않은
시간(time)
야광의 밤을 지새웁니다
의미도 없는 詩를 만들며
······
독자의 시 <일요일> 부분
위 작품은 일요일의 바쁜 일과를 그려내고 있지만 의미상의 연결과 이미지의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감흥도 유발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율격에서 뒤떨어져 있으며 시적 표현을 얻었다고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처음으로 마주하던 날
막걸리에 절인 컬컬한 웃음으로
‘사돈, 저는 똥차 모는 놈입니다’하던
그 차에 손주들 치켜세워
광안리 방파제 돌아
을숙도 갈바람 맞아
‘자, 큰 차 타고 드라이브 가자’던 당신은
지난 성묘 길
천만 겹 동여맨 삶의
보퉁이 풀어
당신 아버지 벌건 뫼 적시더니
해 묵은 진땀 닦으며
그 품으로 드셨습니다.
저 만치서
힘겨운 걸음마 익히던
막내 손주 덕영이도
이제 제 자전거 타고
삼대(三代) 귀한 손녀 보라미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이순(耳順)의 문턱을 바라보다
당신은 가고 없습니다.
독자 이현주의 시 <無> 전문
시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구체성으로 살려 내면서 잔잔한 감흥을 건네주고 있는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 순으로 구성을 하고 있어 쉽게 이해가 된다.
나) 허구성 (fiction)
시는 현실세계의 모습은 아닙니다. 현실세계의 모습을 가지고 시인이 재구성한 허구이거나 가상의 세계입니다. 가장 정직하고 진솔해야 하는 것이 시라고들 합니다. 그것의 의미는 시가 담고 있는 의미나 세계가 객관성 있고 진리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표현되고 있는 방법에 있어서는 꾸며낸 허구에서부터 현실의 모습까지 다양하게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논픽션으로 창조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시는 시인이 자신의 주관에 의해 만들어 낸 하나의 사물인 것입니다. 즉 객관적인 상관물을 시인의 주관에 의해 재편한 뒤에 객관적으로 공감을 느낄 수 있겠금 수사법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창작품입니다. 그러므로 픽션일 수밖에 없습니다.
겨우내 삭발을 하고
시린 바람 앞에
살을 에이며
백일 수도를 끝낸
대지의 이마 위에
마침내
모발같은 봄풀이
뾰죽뾰죽 솟아나고 있다
빈곤했던 나목들의 가지에도
아직은 풍요롭지는 못하지만
푸른 언어들이 날개를 달고
살이 붙기 시작하고
하늘과 땅이 대면을 하고
연민의 정을 나누며
맞선을 보는 날
독자 최명선의 시 <봄> 전문
새 봄을 맞이하여 나무 가지에 새롭게 움트는 새싹을 삭발한 스님의 머리에 새로 뾰족뾰족 돋는 모발로 형상화해 낸 것이다. 이 시의 묘미는 ‘백일수도를 끝낸/ 대지의 이마’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스님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그것을 유추해석하게 만드는 의미연결이 묘미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허구로 된 진실인 것입니다. 겨울철의 나무들과 삭발한 스님을 연결 지우는 허구는 객관적인 정서를 획득하면서 새롭게 논리를 갖추게 됩니다. 시는 허구에다 논리를 부여하는 비논리성으로 점철되는 것입니다.
이 시는 시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불완전해 보입니다. 그것은 1연에서 의미가 제공된 백일 수도의 의미를 좀더 발전시켜 이 시의 주제로 이끌고 나갔어야 하는데 2연에서 맞선 보는 하늘과 땅의 의미로 1연과는 다른 의미구도를 갖습니다. 이 점이 불완전한 모습입니다. 여기에 제 3 연을 덧붙여서 완성도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겨울 껍질을 부수고
솟아오르는 희열
번뇌는 하늘을 향한 손짓으로
그늘아래 숨어 있다.
이 시는 1연에서 제시된 강한 이미지인 승려의 모습을 내면적으로 마무리가 되어야 완성된 모습으로 끌어 올려질 것으로 여겨집니다.
현대시에서 간혹 신문기사를 이용하거나 현실상황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서 새로운 표현을 획득하려는 모색도 있습니다. 시가 가진 본래의 모습을 파괴하는 이른바 해체시의 모습을 띠고 있는 시를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결국은 시적 허구에 다름 아닙니다. 신문기사나 티뷔 화면의 재생 그것마저 시인에 의해 선택되어 졌다는 의도성 때문에 하나의 허구로 받아 들여 질 수 있습니다.
다) 언어의 비유적 사용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결국 허구이며 그 허구를 잘 드러내기 위하여는 직선적인 언어사용보다는 각종의 수사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시에서 사용하는 비유법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사용하는 비유는 은유입니다. 은유는 시가 가진 원형에 가장 친근한 비유법으로 서로 상통하며 시적 표현을 얻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는 사실입니다.
관객도 없는 허공 속에
무대 하나 차려 놓고
스스로 몸을 가누어
열연 속에 몰두하는
외로운 예술가여
보는 이도 없는 무대 위에
빈 바람만 채워놓고
누구를 위한 열연이기에
스스로 외길 속을 걷고 있는가
그에게 주어진
버릴 수 없는 천직
육체의 선율 하나로
백조이다가 바람이다가
애환의 무늬를 짜내는
이름 없는 광대이다가
바람만 스쳐 가는 허공 속
빈 무대를 지키다가
그렇게 한 생애를 마치는가
독자 김향숙의 시 <거미> 전문
예술가를 거미에 빗대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거미를 예술가에다 빗대어 그들이 가진 공통성으로 접근하고 있는 은유를 사용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고 접근하기 어렵게 비춰지는 것은 비유 때문입니다. 비유도 객관성을 얻을 때에만 시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비유라 할지라도 자신만이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비유는 시를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쉬르 계열의 시에서 이미 검증된 바 있습니다. 시를 ‘새롭게 하기’와 ‘낯설게 하기’에 집착하다 보면 쉽게 객관성을 얻지 못하는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객관성 확보에 신경을 써야 할 줄로 압니다.
비유법에 가서는 뒤에 가서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시의 언어’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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