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강영환 시 창작법 강의 11
정신적 이미저리
인간이 세상과 교감을 주고받는 통로는 바로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지닌 오감과 그 외 다른 신체적 활동에 의해 느껴지는 세상을 시인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감각에 의해 감지되는 의미들은 시인의 정신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그것을 독자에게 언어로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표현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잘 못 표현되면 저속하거나 경박스러운 표현에 빠질 우려가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 많은 경험과 더 깊은 사색에 의해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려 주는 정신적 이미저리가 요구되는 것도 그것입니다.
정신적 이미저리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는 감각적 경험에 일어나는 상을 강조합니다. 육체를 통해서 느껴지는 정신의 작용 그것은 오감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그 외 기관, 근육감각 등에 의해 일어나는 의미들일 것입니다.
‘바다는/ 사나운 짐승처럼 다가온다’ 라고 했을 때, 또는 김광균 시인의 <뎃상>에 나오는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와 같은 표현이 시각에 의해 드러낸 이미지인 것이며,
’바다는 철썩 철썩/ 육지의 따귀를 때린다‘는 표현과 김소월의 <길>에서 ’어제도 하루 밤/나그네 집에/ 까마귀 까악까악 울며 세었소‘는 청각적 이미저리이며,
‘산에서는/ 어머니 냄새가 난다’는 표현이나 ‘그녀는 밤꽃 냄새로/ 오르가즘에 닿고/ 그 남자는 생선 비린내로/ 수심에 가라 앉는다’는 후각적 이미저리입니다.
‘그대 입술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미각적 이미저리이며,
‘비단결 같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대’는 촉각적 이미저리입니다.
기관적 이미지란 고통, 맥박, 호흡, 소화 등의 자각을 말하며 ‘거친 내 호흡 끝에/ 벌판이 놓여 있다’ 나 ‘조국! / 이 말만 들어도/ 내 가슴은 뛴다’ 나 같은 표현들입니다.
근육 감각적 이미저리는 근육의 긴장과 움직임의 자각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문을 열었을 때/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와 같은 표현이 그것입니다. 어떻게 정신에 자극하는 감각적 작용들은 실제 예를 들어 가면서 훈련해 본다면 더 좋은 표현에 닿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시의 한 부분으로 작용할 뿐 전체는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는 어디까지나 단선적인 사고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 여러 가지 이미지들은 서로 교호하거나 복합적으로 연결되면서 복잡한 양상을 지니게 됩니다. 이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며, 또한 이의 해석도 독자의 수준에 따라 그 폭을 달리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같은 시의 구절을 해석함에 따라 이런 편차는 바로 인간에 작용하는 그런 감각적 기능의 정도가 문제 아니라 객체가 느끼는 정도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 감각적 이미저리를 차용할 때는 좀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독자의 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들은 비 온 뒤 죽순처럼/ 잘도 쭉쭉 미끈하게 커 가는데
의지할 지팡이가 없으면/ 바로 서지도 못한다
용트림하듯 아프게 배배 꼬여/ 간신히 올라간 그곳에/ 육신을 맡기고
꼭꼭 다진 한숨/ 넓은 하늘에 푸르게 내 뿜는다
다정한 오월의 미풍이/ 초록빛 훈장을/ 자랑스레 흔들고
사리처럼 영롱한/ 그대의 향기로운 등은/ 지친 길손의 가슴을/ 환히 밝혀 주는/ 보랏빛 그리움이 되었어라
독자의 시 <등나무> 전문
이 작품은 대상인 등나무를 눈으로 관찰하여 느낀 이미지를 가지고 형상화 시킨 시각적 이미저리를 주로 차용하여 구성한 작품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 예를 찾아보면 ‘쭉쭉 미끈하게’ ‘용트림하듯 아프게 배배 꼬여’ ‘초록빛 훈장’ ‘사리처럼 영롱한’ ‘보랏빛 그리움’ 과 같은 표현들이 그것입니다. 그 외 ‘꾹꾹 다진 한숨‘은 기관적 이미저리이며 ’그대의 향기로운 등‘은 후각적 이미저리이며, ’육신을 맡기고‘는 촉각적 이미저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에서 많은 이미저리가 차용된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시각적 이미저리가 너무 많이 차용됨으로써 그 신선함을 느낄 수 없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정신적 이미저리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전체 주제를 되살리는 한 방편으로서 사용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좀 더 함축하여 본다면 어떨까요.
비 온 뒤 죽순은/ 미끈하게 솟아오르는데
의지할 기둥이 없으면/ 바로 서지도 못한다
용트림하듯 아프게 꼬인/ 육신을 맡기고 올라 선 곳
참내 하던 깊은 숨을 토하면/ 넓은 하늘이 멍이 든다
오월의 미풍은/ 초록빛 훈장으로 자랑스럽고
영롱한 사리로 향기로운/ 그대 등은/ 지친 길손의 가슴을
밝혀 주는 보랏빛 그리움
다른 이의 작품을 개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하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한다면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최종의 결정은 본인의 뜻에 따라야 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원래의 작품이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면 그에 합당한 변명의 말이 없습니다. 시는 개인적 창작의 소산물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성공한 다른 작품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기억하는 나의 열병은/ 수평선 같은 그리움
가끔씩은/ 그 만큼의 간격으로/ 푸른 미소를 날리며/ 깊은 눈짓에 익숙해 있어도/ 바라만 보아야 할 거리
시퍼렇게 멍들지 않고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가르치며/ 침묵으로 빛나는 가슴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잃었습니다
서툰 발길들이/ 흔적을 남기고 간 자리에는/ 오래 전부터 시작된/ 나의 고질병이/ 박꽃 같은 눈물로 흔들리고
가슴을 쓸어 내려도/ 잠들지 않는 바람은/ 또 다른 거리로 질주하는데/오늘도 마주 서서/눈빛을 맞추는 우리는/ 숨바꼭질 같은 사랑입니다.
독자 김정순 씨의 <바다에서> 전문
위 작품은 바다를 바라보며 남에게 다가갈 수 없는 안타까움과 멀리 떨어져서 그리는 애틋한 그리움을 형상화시키고 있습니다. 바라보기 즉 시각적 이미저리에 의해 구축한 이 작품에서 ‘수평선 같은 그리움’ 이나 ‘푸른 미소’ ‘박꽃 같은 눈물’ 같은 표현이 시각적 이미저리입니다.
이 작품은 4연과 5연이 앞부분과 필연성을 가지지 못하고 돌출되어 있기에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이미저리에도 몇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미지 창조력이 시인마다 다르듯 그것을 읽는 독자들의 이미지 창조력이 다릅니다. 그래서 해석의 차이에 따라 시의 전달이 정확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정신적 이미저리를 너무 강조하게 되면 시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과 시에서 구현하고자하는 세계와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미지 자체의 감각적 특질만을 강조함으로써 시의 문맥 속에 놓이는 그 이미지의 기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적 이미지의 기능은 독자나 시인의 정신 속에 생산되는 감각의 유형, 즉 정신적 이미저리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시적 언어의 장치로서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물음으로써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