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1937~2007)은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하느님의 눈물>,<점득이네> 등 100여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쓴 동화작가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주년이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도쿄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광복 후 귀국했지만 가난 때문에나무 장수, 고구마 장수 등을 하며 객지를 떠돌다 18세 때 경북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자리 잡았습니다. 22세 때에 지병인 결핵 때문에 한 때 집을 나갔다가 돌아와 1982년까지 마을 교회 종지기로 살았습니다.
그는 동화로 인세를 많이 받았지만 1983년부터 그가 직접 지은 5평짜리 오두막집에서 강아지와둘이서 검소한 삶을 살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70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권씨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그리고 무고하게 고난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주요 주제로 다뤄왔습니다.
그는 세상을 뜨기 전,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 달라.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거나 싸우지 말고 통일을 이뤄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1970년대 초반 어느 날 47세의 시골학교 교사이며 아동문학가인 이오덕 씨가 당시 35세의 무명작가인 권정생 씨를 찾아갔습니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권씨의 동화 <강아지똥〉을 읽은 뒤 해맑은 작품세계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두 작가는 금세 마음이 통했고 그 후 두 사람은 수십 년간 수 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평생지기로 우정을 쌓았습니다.
이 씨는 권 씨와 주고받은 편지 하나하나에 직접 제목을 달아 보관해 오다 이 씨가 출판사에 편지들을 보내 권 씨의 책 출판을 부탁했습니다. 권 씨는 책 내기를 원치 않았지만, 결국 독자들과 만나게 됐었지만 이 씨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권 씨는 이 씨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글을 책의 서문으로 썼습니다.
이 씨는 임종하기 전에 일절 조문객을 받지 말고 부고도 장례 이후에나 알리라고 가족들에게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묻힐 곳 근처에 세울 시비를 지정해 두었습니다. 시비 하나에는 권정생 씨의 〈밭 한 뙈기〉를 넣고, 다른 하나의 시비에는 자신의 시 〈새와 산〉을 넣도록 했습니다. 충주에 있는 이 씨의 무덤가에는 지금 고인의 바람대로 두 시비가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이 두 사람의 작품들을 더욱 인간적이며 감동적인 것으로 만들며 그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내'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된다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이오덕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의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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