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05) - 전복과 풍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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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J의 엄마는 미혼모였다 어느 얼뜨기가 그녀를 받아들여 같이 살았다 의붓아비는 토목공이었다 병원에 가지 못해 가축우리에서 태어났다 자라면서 가출을 한 번 했는데 갈 곳이 없어 교회에 무단 침입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했다 아무것도 안 할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래* 어느 날 몽상이 늙은 백수건달의 머리를 망치로 뽀갰다 히피가 되는 거야 사막으로 나가 코카인과 헤로인을 번갈아 하고 명상 중에 악마를 보았다 접신을 하고 초능력을 얻었다 무당이 된 그는 낙오자를 끌어 모아 교주가 되었다 엘에스디를 왕창 먹여서 환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가끔 흑마술을 부려 물 위를 걷기도 하고 주문을 외워 시체를 좀비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패거리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달변이었다 항상 주위에 유령이 출몰하고 더러운 비둘기가 맴돌았다 매춘부를 좋아해서 자주 그녀들과 어울렸다 세력이 점점 커져 히피교주를 숭배하는 무리가 늘어갔다 그는 스타가 되었다 식민제국주의를 타도하자며 무산 계급 기층 민중을 옹호했다 체제 전복을 기도했고 이내 체포되었다 생쥐떼 같은 대중은 그를 배신하고 법원은 연쇄살인자를 사면했다 내란 음모죄로 사형이 집행되어 전기의자에 앉았다 일 분을 채우고 청진기를 대보았다 여봐라 저놈을 더욱 지져라 눈알이 튀어나오고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그는 죽고 나서 더욱 유명해졌다 며칠 뒤 좀비가 되어 공중 부양 후 미확인 비행물체를 타고 사라지며 말했다 아일비백 신드롬이 형성되고 전기가 출간되고 추앙하는 자들이 늘어갔다 요술왕자 겸 히피교주 때문에 살육과 전쟁이 일어났다 그의 적자라고 주장하는 새끼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교주를 팔아 돈을 벌었다 J를 전기구이로 만든 의자는 성물이 되었다.
*그룹 코코어의 노래 <잠수>중에서
# 21세기에 예수가 부활했다. 한 시인의 손끝에서 그는 다시 태어나 패러디의 대상이 되어 재림하였다. 이 시의 중심축은 예수이다. 경전 속의 인물이 아니라 지배적 관념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J"이다. 정본의 서사를 뒤집어 종교의 부정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그와 관련된 현실의 비루한 이면까지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신성성이 거세된 공간에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들이 들어서고, 화자에 의해 비틀어진 현실에서 왜곡된 질서가 파편화되어 나타난다.
동정녀 마리아는 철없는 "미혼모"로, 요셉은 “얼뜨기”로 표현된다. “백수건달”로 등장하는 예수는 마약의 효과로 악마를 보고 초능력을 얻어 “무당”이 된다. 광야에서의 시련도 마약 복용의 과정으로 폄하된다. 또한 예수는 히피교주가 되어 따르는 무리들에게 “엘에스디를 왕창 먹여 환상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체제 전복”을 기도하다가 체포된다. 그러나 무리들은 그를 배신하고, 예수는 사형을 당한다. 그의 사후에 예수는 더욱 유명 스타가 되고 그를 팔아 돈을 버는 자들도 생겨난다. 또한 “요술왕자 겸 히피교주” 때문에 전쟁은 끊이지 않고 그를 죽게 한 의자는 “성물”로 둔갑하여 거래된다.
이 시에서 풍자의 대상은 예수와 기성 종교다. 긍정과 부정의 경계에 서 있는 화자는 대중, 권력, 종교계에 비판적 언술로 맹공을 가한다. 한때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은 현실적 이익에 따라 언제든 등을 돌리는 “생쥐 떼” 같은 대중일 뿐이고, 타도하고자 했던 권력은 “내란음모죄”라는 죄명으로 예수를 사형에 처하는 폭력적 파쇼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계 역시 종교의 이름으로 예수를 팔아 전쟁과 살육을 자행하고, 돈벌이를 일삼는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하지 않은 현실의 아수라가 풍자의 대상이 되어 기존의 이데올로기와 관념 체계를 흔들고 억압된 욕구가 분출하는 통로를 만들어준다. 비판의 범주가 예수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전반적인 삶을 아우르는 것도 이 시의 울림을 크게 하는 요소이다.
패러디 이전의 대상과 이후의 대상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그 긴장 사이에서 뒤틀린 의미가 생성된다. 그러므로 풍자는 단순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게 한다. 일회성 사건으로 그치고 마는 현실 고발의 시들과 풍자의 시가 구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풍자는 현상을 넘어서는 큰 눈을 가질 때만 작동하는 정신 작용이다. 획일화되고 경직된 시선은 유장하게 흐르는 풍자의 대하를 거느릴 수 없다.
우리 시에는 풍자와 해학의 시가 드물다. 편향된 시 문법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상력과 개성적 어법으로 보다 광활한 시의 지평을 열어가야 하는 것이 현대시의 과제이다. 시단의 풍요와 다양화를 위해서 부정과 전복의 망치를 휘둘러 최초의 세계를 여는 ‘큰 눈’의 시인들이 많아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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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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