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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 교수로 산다는 것](상) 교수마다 고교 할당 ‘영업구역’, 교사에 술접대 ‘고객관리’
경향신문 윤희일·최슬기·최승현·강홍균 기자 입력 2012.08.24 21:45 수정 2012.08.24 23:05강원지역 사립대 ㄱ교수(46)는 지난 21일 신입생 유치 홍보를 위해 인근 고등학교를 찾았다가 머쓱한 꼴을 당했다. 어렵사리 고3 담임교사들에게 "대학 홍보차 왔다"는 말을 건넸으나 "우린 시간 없으니 연구부장이나 교감 선생님에게 가 보라"는 싸늘한 답변만 돌아왔다. "입시 지도 하시느라 신경 많이 쓰이시죠"라며 너스레까지 떨며 부장교사에게 고3 담임들을 좀 모아달라고 요청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ㄱ교수는 24일 "부장교사가 빙긋 웃으며 '교수님이 더 고생하시는 것 같은데 팸플릿이나 놓고 가시라'고 하더라"며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입시철마다 기념품을 들고 학교를 찾아다니며 '학생을 보내달라'고 읍소하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되다시피 한 지 오래"라며 "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지방대학 교수들이 신입생 유치 '영업사원'이 돼 연구실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방대학 상당수가 신입생 유치에 사활을 걸면서 교수들은 신입생 확보를 위한 '영업사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썰렁한 지방과 달리 지난 6월 한 교육기업이 서울에서 연 대학입시설명회에는 학부모·학생 9000여명이 몰려들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음료수·빵 사들고 각종 선물 챙겨
올 들어 홍보 위해 차로 2만㎞ 달려
▲ "팸플릿 놓고 가시라" 잡상인 취급
경쟁 치열 중국·몽골로 발길 돌려
신입생 충원율을 올리기 위해 상당수 지방대학들이 교수들에게 담당학교, 담당구역을 정해주고 '매출 신장(신입생 증대)'을 독려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 학생이 없으면 학교도, 교수도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에 밀린 교수들은 자신의 주머니까지 털어가며 오늘도 '영업(신입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충청지역 한 대학의 ㄴ교수(52)는 일종의 '영업구역'이 있다. 대학이 자리한 지역과 인근 시·도의 고등학교 80여개다. 이 구역을 꾸준히 관리하며 신입생을 확보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그는 "입시 홍보를 담당하는 동료교수 4명에게도 80여개씩의 고교가 할당돼 있다"고 말했다.
ㄴ교수가 올 들어 입시 홍보를 위해 자신의 차량을 타고 이동한 거리만 2만㎞에 이른다. "평상시에 입시담당 교사들과 유대관계를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결정적인 순간(입시철)에 '원서'라는 결과물을 얻어내려면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몇 년 전 무작정 방문한 고교에서 잡상인 취급을 받고 난 뒤 '들이대기식'에서 '인맥관리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한 번 안면을 튼 교사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연을 이어간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며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더라도 언젠가는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고객 관리'인 셈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지난해 입시원서를 400여장이나 받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수능이 끝나고 입시철이 되면 교수 10여명을 대동하고 일선 학교를 방문해 각 반을 돌며 입시설명회를 열고 원서를 받는데, 금광에서 금맥 쏟아지듯 한 학교에서 원서가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원서가 다 입학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한 학교에서 100여장의 원서를 받아낸 적도 있다"며 "평상시 닦아놓은 친분이 없었다면 교실은 물론 교무실에도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교수의 출신지, 출신 학교 등 연고를 따져 담당 지역과 학교가 정해진 대구지역 한 대학의 ㄷ교수(48)는 고교 20개를 맡고 있다. 그는 매년 6~7월부터 학교 방문을 시작해 원서접수가 시작되는 9월부터 입시가 마무리되는 이듬해 1월까지 집중적으로 진학지도실이나 3학년 교무실을 찾는다.
그는 "빈손으로 갈 수 없다. 음료수나 빵 등을 사들고 가기도 하는데 학교의 예산지원이 시원치 않아 내 지갑을 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교무실에서 다른 대학 교수들, 특히 아는 교수를 만나면 서로 참 멋쩍어한다"며 "한 군의 고교에는 수험생이 30여명인데 신입생 유치를 위해 찾은 교수 등이 30명을 넘어 북새통을 이룬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영업에 나선 교수들을 바라보는 일선 고교 교사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울산지역 고교의 한 교사(54)는 "교수들의 신입생 유치전은 점잖은 말로 '입시 홍보'라고 하지만 사실상 '영업' 아니냐"며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할 교수들이 다른 지방까지 와서 교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다른 교사(42)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설명회 명목으로 리조트나 콘도 등으로 진학담당 교사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산삼배양액, 외장하드, 스푼세트 등 각종 선물을 주고 있다"며 "이 같은 비용도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나온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밝혔다.
대학 교수들이 경쟁적으로 홍보에 나서면서 일선 고교 쪽에서 은근히 접대자리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충청지역 한 교수는 "고교에서 전화를 걸어와 '간담회나 한번 열자' '식사나 한번 하자'며 접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경우 선물 지참은 필수"라고 말했다.
일부 대학 교수들은 고교생을 위한 각종 강좌에 동원되기도 한다. 광주지역 한 대학 교수들은 지난해 말 30개 고교를 돌며 '피부관리 테크닉' '사진찍기' 등의 특강을 열었다. 충청지역 한 대학은 주말마다 고교생들을 학교로 초청, 외식 관련 교수들을 통해 빵과 과자를 구워주는 등의 행사를 열기도 한다. 이 대학이 입시철마다 교사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여는 것을 놓고 고교 쪽에서 "신입생을 끌어들이기 위해 '쇼'까지 한다"는 비아냥이 나온 적이 있다.
최근에는 외국에까지 나가 신입생을 모으기도 한다. 제주지역 ㄹ교수는 지난 5월 중국을 방문, 8개 학교를 돌아다녔다. 지역 내에서의 학생 유치가 한계가 있자 중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대구의 한 대학도 지난달 총장과 교직원들이 몽골을 방문, 유학 설명회를 열어 40명의 학생을 유치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중국인 유학생 유치 경쟁이 치열해 몽골로 눈을 돌린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문창기 사무국장은 "학생 충원과 취업률 문제를 고민하던 대전지역 교수의 안타까운 자살 사건에서 보듯이 지방대의 문제는 이제 한계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능력 있는 지방대학 교수들이 길거리를 헤매며 영업에 몰두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학의 수와 입학정원을 조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 윤희일·최슬기·최승현·강홍균 기자 yhi@kyunghyang.com >
ㄱ교수는 24일 "부장교사가 빙긋 웃으며 '교수님이 더 고생하시는 것 같은데 팸플릿이나 놓고 가시라'고 하더라"며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입시철마다 기념품을 들고 학교를 찾아다니며 '학생을 보내달라'고 읍소하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되다시피 한 지 오래"라며 "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지방대학 교수들이 신입생 유치 '영업사원'이 돼 연구실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 음료수·빵 사들고 각종 선물 챙겨
올 들어 홍보 위해 차로 2만㎞ 달려
▲ "팸플릿 놓고 가시라" 잡상인 취급
경쟁 치열 중국·몽골로 발길 돌려
신입생 충원율을 올리기 위해 상당수 지방대학들이 교수들에게 담당학교, 담당구역을 정해주고 '매출 신장(신입생 증대)'을 독려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 학생이 없으면 학교도, 교수도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에 밀린 교수들은 자신의 주머니까지 털어가며 오늘도 '영업(신입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충청지역 한 대학의 ㄴ교수(52)는 일종의 '영업구역'이 있다. 대학이 자리한 지역과 인근 시·도의 고등학교 80여개다. 이 구역을 꾸준히 관리하며 신입생을 확보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그는 "입시 홍보를 담당하는 동료교수 4명에게도 80여개씩의 고교가 할당돼 있다"고 말했다.
ㄴ교수가 올 들어 입시 홍보를 위해 자신의 차량을 타고 이동한 거리만 2만㎞에 이른다. "평상시에 입시담당 교사들과 유대관계를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결정적인 순간(입시철)에 '원서'라는 결과물을 얻어내려면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몇 년 전 무작정 방문한 고교에서 잡상인 취급을 받고 난 뒤 '들이대기식'에서 '인맥관리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한 번 안면을 튼 교사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연을 이어간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며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더라도 언젠가는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고객 관리'인 셈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지난해 입시원서를 400여장이나 받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수능이 끝나고 입시철이 되면 교수 10여명을 대동하고 일선 학교를 방문해 각 반을 돌며 입시설명회를 열고 원서를 받는데, 금광에서 금맥 쏟아지듯 한 학교에서 원서가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원서가 다 입학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한 학교에서 100여장의 원서를 받아낸 적도 있다"며 "평상시 닦아놓은 친분이 없었다면 교실은 물론 교무실에도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빈손으로 갈 수 없다. 음료수나 빵 등을 사들고 가기도 하는데 학교의 예산지원이 시원치 않아 내 지갑을 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교무실에서 다른 대학 교수들, 특히 아는 교수를 만나면 서로 참 멋쩍어한다"며 "한 군의 고교에는 수험생이 30여명인데 신입생 유치를 위해 찾은 교수 등이 30명을 넘어 북새통을 이룬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영업에 나선 교수들을 바라보는 일선 고교 교사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울산지역 고교의 한 교사(54)는 "교수들의 신입생 유치전은 점잖은 말로 '입시 홍보'라고 하지만 사실상 '영업' 아니냐"며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할 교수들이 다른 지방까지 와서 교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다른 교사(42)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설명회 명목으로 리조트나 콘도 등으로 진학담당 교사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산삼배양액, 외장하드, 스푼세트 등 각종 선물을 주고 있다"며 "이 같은 비용도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나온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밝혔다.
대학 교수들이 경쟁적으로 홍보에 나서면서 일선 고교 쪽에서 은근히 접대자리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충청지역 한 교수는 "고교에서 전화를 걸어와 '간담회나 한번 열자' '식사나 한번 하자'며 접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경우 선물 지참은 필수"라고 말했다.
일부 대학 교수들은 고교생을 위한 각종 강좌에 동원되기도 한다. 광주지역 한 대학 교수들은 지난해 말 30개 고교를 돌며 '피부관리 테크닉' '사진찍기' 등의 특강을 열었다. 충청지역 한 대학은 주말마다 고교생들을 학교로 초청, 외식 관련 교수들을 통해 빵과 과자를 구워주는 등의 행사를 열기도 한다. 이 대학이 입시철마다 교사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여는 것을 놓고 고교 쪽에서 "신입생을 끌어들이기 위해 '쇼'까지 한다"는 비아냥이 나온 적이 있다.
최근에는 외국에까지 나가 신입생을 모으기도 한다. 제주지역 ㄹ교수는 지난 5월 중국을 방문, 8개 학교를 돌아다녔다. 지역 내에서의 학생 유치가 한계가 있자 중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대구의 한 대학도 지난달 총장과 교직원들이 몽골을 방문, 유학 설명회를 열어 40명의 학생을 유치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중국인 유학생 유치 경쟁이 치열해 몽골로 눈을 돌린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문창기 사무국장은 "학생 충원과 취업률 문제를 고민하던 대전지역 교수의 안타까운 자살 사건에서 보듯이 지방대의 문제는 이제 한계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능력 있는 지방대학 교수들이 길거리를 헤매며 영업에 몰두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학의 수와 입학정원을 조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 윤희일·최슬기·최승현·강홍균 기자 yhi@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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