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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의 세계>작전세력에 당한 어느 공무원의 피눈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1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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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의 세계>작전세력에 당한 어느 공무원의 피눈물

헤럴드경제 | 입력 2012.10.19 07:07

 

 

[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15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그의 커피잔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약속시간에 착오가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가을 햇살이 참 행복해보입니다"며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말투로 자신의 참담한 처지를 풀어나갔다.

한때 남들이 부러워하던 6급 연구직 공무원 심규호(가명ㆍ41) 씨는 주식투자로 재산은 물론 직장과 가정을 잃고 신용불량자의 낙인까지 찍힌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깊은 한숨으로 인터뷰는 시작됐다. "저 같은 사람도 신문 인터뷰 대상이 되나요?"

심 씨는 "실패 사례도 성공을 꿈꾸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며 "하지만 주식투자로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2009년부터 아이 학원비라도 벌 생각에 주식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50주로 시작한 '주식 생초보' 심 씨는 곧 수백%의 수익률 종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점심시간과 퇴근 이후에는 증권방송 시청과 증권정보사이트 서핑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심 씨는 2009년 봄, 인터넷 주식카페에서 'OO아빠'라는 주식 고수를 알게 됐다. 그는 "OO아빠가 알려준 코스닥 관리종목 W사로 처음 한 달 동안 120%의 수익을 올렸다"며 "주식을 매도하고 계좌에 찍힌 돈을 보고 흥분했다"고 전했다.

이후 3개월 동안 코스닥 P 사, D 사, B 사 등으로 월평균 50% 정도의 수익을 거뒀다.

"OO아빠의 정보나 분석은 탁월하다 못해 '주식의 신' 같았죠. 점점 그의 말을 맹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OO아빠는 전직 증권맨으로 지금은 강남의 한 부티크(소규모 사설투자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며 "강남 큰손들 돈을 관리하다 보니 고급 정보가 많았다"고 전했다. 500만원으로 시작한 심 씨의 주식 투자자금은 그 사이 4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투자자금과 함께 욕심도 늘었다. 목표는 아파트 잔금으로 바뀌었고 부모와 처가식구, 친구들과도 주식 정보를 공유했다. 여기저기서 돈을 긁어모아 5억원이 넘는 자금을 주식에 몰아넣었다.

인터뷰 내내 이어지던 그의 한숨 소리였지만 이 순간 주위의 시선을 모을 정도로 깊은 한숨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딱 한 번만 더하고 그만두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때부터 급락하는 주가 그래프처럼 그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OO아빠에게 추천받은 J 사 주식은 30%가량 오른 뒤 급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OO아빠는 '개미를 떨궈내기 위해 잠시 조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해외 자원개발이 공시로 나오면 주가는 날개를 달고 날아갈 것'이라고 심 씨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결국 매수가보다 25% 하락한 가격에 주식을 매도했다. 부모는 물론 처가식구와 친구들에게서 원망을 들어야 했다.

"그때부터 직장일은 뒤전이 됐어요.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그때 그만두었으면…"이라며 말을 흐렸다.

이후 D 사, C 사의 주식을 거치면서 주식 손해율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한 방만 터지면 그까짓 손해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주위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너무 불안했다.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집 담보대출과 회사 동료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OO아빠가 관리종목이던 A 사 주식을 심 씨에게 권했다. 비상장사인 바이오기업 B 사가 인수ㆍ합병(M&A)을 통해 우회상장하면 '황제주'로 돌변할 것이라는 달콤한 얘기와 함께.

그러나 대박의 기대는 큰 충격으로 돌아왔다. 심 씨는 "A 사 전 대표가 횡령 배임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고, 주가 조작과 허위 공시 등의 악재가 쏟아져 나왔다"며 "주식을 팔려고 해도 팔 수 없는 수렁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A사는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됐고 수억원의 자금을 투자한 심 씨는 원금의 5%도 안되는 돈만을 건졌다.

심 씨는 "돈을 빌려준 직원과 말다툼하다가 회사에서 주식투자 사실을 알게 됐고 공무원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며 "아이들은 본가와 처가댁에 보내놓고 아내와 법적 이혼 후 식당일을 하고 있다"고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직장을 잃은 후 자포자기하며 죽을 생각도 했지만 아이들을 생각해 다시 힘을 내고 있다"면서 "주식투자를 몰랐던 그때가 그립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총총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