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제1회 웹진 시인광장 新仁賞 公募 당선시
페르시아 전쟁 외 4편
1.
페르시아 성문을 보았나 무너진 벽과 벽 사이.
구름들이 쐐기문자처럼 박혀있네 역사서 페이지 넘어가듯 하늘 한 편이 접혔다 펼쳐지네 성문에 찍힌 무수한 말발굽, 시민들 옷자락처럼 나부꼈네 올리브 열매를 빻던 맷돌 같은 사내들의 맨가슴, 화살도 막아낼 듯 단단했네
연꽃은 피었지 긴 회랑을 따라 수 백 그루 피었지 시간의 이끼조차 끼지 않았지 눈먼 거지들 중얼거리고 앵무새는 시계추처럼 떠들었지 몇 개의 태양이 주술사 표정을 지었으며 필경사들, 변방 소식에 고꾸라지기도 했지 모래의 시간, 천지사방을 진군했네
삼나무 숲이 붉게 물들었네
2.
바닷물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아내의 젖무덤에 묻힐 수 없네 전사들, 바람의 흐름을 눈치채야 했다네 황금물고기가 되고마는 그 성문을 기억하나, 철옹성의 위협을 안고 있는 그 성문 아래 황금 술잔을 쥐던 손들, 청동단검을 얻고서야 비로소 사내가 됐다네
염탐꾼의 괭이갈매기 부리 같은 입을 본 적이 있는가, 협잡꾼은 새의 눈을 갖고 있다네 망루에 오른 병사들의 눈빛, 마침내 달빛에 젖고 말겠지 뿔피리는 이제 그만 불어야 하네 집 지킴이는 노예가 아니라 거위라지
돌고래들이 궁궐 벽면에서 펄쩍 뛰고 있네
-전진, 전진... 파르티아로
고향은 멀어만 가고, 보병들의 군홧발 속에 파묻히네 모래성.
3.
왕의 길은 피로 물들었지. 원형 무덤을 파면 하얀 뼈가 누워있네
누대의 갑옷을 벗어던진 조각상, 부서진 갑옷에 얼룩진 피의 함성
아가멤논의 황금가면을 술잔처럼 치켜들어보네
폐허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은화는 야자나무 가로수 지나 성벽에까지 매달렸지 굶주린 사자 모래구릉을 넘는 순간까지, 갈대로 물고기를 만들었지 용감한 테세우스를 닮고픈 아이들, 빈 칼집으로 전쟁영웅이 되기도 하네
어여쁜 왕비의 눈물, 가난한 백성을 구원할 수 없다지 탑에 갇힌 왕비들의 눈물이 메마른 땅에 거름이 될 수 있기를
4.
불사(不死)의 군대가 되는 비결은 낙타의 콧김에 도망가지 않는 것.
전령들, 주머니 속 따끈한 은화를 떠올리며 길을 달렸네 매의 머릴 가진 호루스처럼 눈 맑은 사람만이 가난한 시간을 버텼네
화살처럼 날아오던 ‘기억하라’던 말, 청동연꽃처럼 단단했던 그 말.
한순간 눈을 멀게 했던 전쟁터를 떠올려보네
새들이 솟구치고 모래시계는 멈추고 아, 세기를 건너 계속되는 전쟁.
가슴과 팔에 창, 방패를 이식했던 병사여, 벽과 벽 사이, 구름들이 세기의 문자처럼 박혔던 페르시아 성문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랑, 십 분 전
‘카페는 이층입니다’ 안내판 걸개가 된 이젤
이젤의 노란 바탕이 해바라기밭 같다
난 돌아오던 지오반나처럼 계단을 오른다 해바라기밭, 오래된 나무 계단이 저음을 낸다
육중한 콘트라베이스, 마지막 음색을 자랑한 건 언제였을까
톱니바퀴 줄감개가 입을 막고 있다
피치카토 주법, 나만 듣는 것일까
램프 아래 ‘감자 먹는 사람들’
그들의 농가는 어둡다
난, 손가락으로 쓴다
커피를 악마의 입술이라 일컫던 ‘Baudelaire’
보르드 슈 페리어를 난, 보. 들. 레. 르 라 부르기로 한다
‘이봐요, 웨이터’
창밖은, 한 치 여백 없이 검은색이 점령했다
주머니를 뒤집는다
휘발된 사랑의 맹세처럼,
색을 잃어버린 유리잔,
그 투명을 따라 금이 번진다
죽은 새떼의 몸통을 질겅 밟으며 걸어가는 코발트청 여인.
바다는 여인의 입수(入水)를 거부한다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다 여인은 물속으로 사라질 듯, 그러나 남자는 여인의 수장(水漿)을 원치 않는다
마흔 일곱의 남자는 안다 여인을 구하는 순간 사랑을 얻게 되리란 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진공관 앰프에서 흐른다
피어나는 나무들, 빛화살이 태양을 가리고
선홍빛 피가 터져나온다
마침내 벽면의 두 남녀, 걸어나오는데…….
그들은 청년 샤갈과 그의 연인 벨라
비데스부르크는 온통 초록 마술에 빠져있다
대지도 집도 나무도.
눈을 감는다
행복이 차오르면, 공중부양 되는 걸까
주문을 걸자
카페는 바다가 된다
카레앙카
우즈베키스탄행 열차는 연발이다
눈보라에 시야가 어지럽다
Expired day. 28. December
필 박스 눌러쓴 여인들이 지나간다
카레앙카 3세*를 그려본다
그녀와 오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반인반수‘바란짜의 땅, 우랄 산맥을 넘으면 배꼽 빠지게 과장된 이야기도 사실이 된다
할아버진 잠을 자다 붙잡혔다 죄명은 조선족 17세, 시베리아 그 유형지로 떠나는 행렬 아무르, 아무르 그 강처럼 흐르는 사람들 북극성 농장에서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맞는 28번째 생일의 주인공 블라디미르 박.
카레앙카, 눈발 속에 우뚝 서 있는 법을 아는, 오줌발이 순식간에 얼어버리는 순간에도 눈빛만은 초록빛.
-안뇽하세뇨?
둥둥 떠다니는 빙산 같은 말,
오래 만지작거려 빛나는 마트로시카처럼 딸려나온다 말을 잃으면 조국을 잃는다는 할아버지의 말.
상자 속에서 그녀, 자작나무 브로치를 꺼낸다 생채기 난 말들 겹겹 딸려나온다 희미한 모국어만큼이나 옅어진 박 뾰돌.
오로촌족의 사촌들, 숲의 숨결 따라 침엽수를 따라 결빙처럼 떠돌던 한국말 몇 마디.
- 깜싸합니다
그래, 그녀와 나, 오래 전부터 카레앙카였다
Today is 29 of December
* 한국인, 또는 ‘한국인 입니까?’의 뜻. 카레앙카 3세는 우즈베키스탄 태권도 국가대표로 발탁된 여성임. 태권도와 한국어를 통해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조국을 러시아에 알리고 있음
바그다드 카페
가슴 속 지도를 펼쳐놓고, 먼 항해를 떠나듯 설레고 있어
회벽에 걸린 시계, 새처럼 날 보고 있어
그 새, 피아노의 떨림판인 양 발자국이 지난 뒤에도 한참을 울지
면도날이 지나갔어,
바람에게 손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야, 커피머쉰에선 검은 강이 쏟아졌다는 건 정말이야, 주말이면 불꽃 문양의 팔뚝들이 신기루 따라 지나갔어
객(客)들은 목적도 없이 목적지도 없이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지, 아니, 돌아오는 게 여행의 목적인 사람들도 있지 사막엔 붉은 장미가 필요없어, 검은 페드라모자도 필요없어
낙타 속눈썹을 한 무희가 마룻바닥에서 수피춤을 추었어 누가 저 넘쳐흐르는 소리를 잠가줘, 열여섯 량 모래폭풍도 잠가줘
사막은 매직,
혼자서도 춤을 출 줄 알아
회오리아이스크림 비행기가 사막을 횡단하는 동안 여행가방은 구석에서 졸다 넘어졌지 가방주인은 뭐가 들었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아, 마침내 맨발로 사막을 횡단할 결심을 했지
기면(嗜眠)의 음악이 흘러, 낡은 전투화를 매만지던 늙은 손들이 하나 둘 흘러간 뒤였어, 오렌지색 나무창문이 모래구릉을 야금야금 뜯어 먹던 늦여름, 모래바람을 주문했지
구름과 총성이 주술처럼 내달리는, 열여섯 량 모래폭풍이 지나간 뒤였어
바람의 굴곡을 따라 달라지는 꿈의 방향들, 자오선 긋듯 우뚝 일어서는 불꽃문양의 팔뚝들, 익숙한 거리 익숙한 얼굴을 지나치면 모서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얼굴들. 마침내 모래바람 속으로 떠난 여행가방, 주인의 거친 손아귀에 덥석, 낚아채이지
장터의 무스타파
무스타파가 장터에 나타나자 달과 별도 따라온다
걸어온 길을 양탄자로 말아놓고
낯선 관광지에 펼친 좌판,
벚꽃이 머리 위에서 예포를 터뜨린다
아이스크림 통 위로 두 뼘 남짓 올라온 무스타파
성소피아 聖像에 박힌 유리알은
자신의 운명을 저울질 한 적 없다
짙은 속눈썹 속에서 되살아나는 쌍봉 낙타
태양 아래 무릎 꿇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툰 한국말이 벚꽃잎 따라 장터를 날면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통 주위를 붕붕댄다
엿장수 장구소리에 파묻힌 한국말
코브라처럼 슬슬 목을 치켜든다
-아이스크림 마. 띠. 써. 요
마법의 손 같은 쇠국자를 휘두른다
빙글빙글, 반달국자 속 아이스크림
거짓말같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의 기다림 가득한 손에
이스탄불의 언덕 하나 얹어주는 무스타파
고깔과자 속엔 에게 해의 석양이 배어 있다
돌아온 시간은 또다시 둥글게 녹는데
꽃잎들의 몸부림 속,
회오리치는 그의 몸
가던 걸음들이 되돌아서고
케밥을 말아 쥐던 손으로 긴 국잘 다시 잡는다
마법의 맷돌에서 흘러나온 이국의 노랫가락
무스타파의 목에 오래도록 감긴다
장선희
1964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8년 월명문학상 수상
당선 소감
너무 오랜 기다림과 너무 좋은 일 앞에선 초연해지는 이상 심리(異常心理). 그 순간 잠시 남의
일처럼 초연하고 싶었다.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어린 소녀가 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동화책을 읽는다. 단발머리 소녀는 긴 머리 인어공주가 좋았다. 공주가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순간 소녀는 자신의 몸도 동글동글 거품이 되어 모두에게서 사라지는 듯 두렵고 슬펐다.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 토요일 오후, 기말시험 대비 보충지도를 하고 있었다. 한 통의 문자와 한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당선 축하 문자를 보
는 순간, 그 기나긴 기다림 끝에 서 있던 나에게 묻는다. ‘ 너 이제 행복하니?’
너무 오랜 기다림과 너무 좋은 일 앞에선 초연해지는 이상 심리(異常心理). 그 순간 잠시 남의 일처럼 초연하고 싶었다.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한 남자가 있었다. 인어공주가 사랑한 왕자를 나도 사랑한 모양이다. 그는 지구에 있었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허나, 나는 부탁을 했다. “당신 닮은 아들, 딸 하나씩만이라도 남겨 주세요.” 남자는 내 곁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듯, 지구
나이 마흔 한 살에 내가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거품 되어 떠났다. 울렁거림으로 전 인생을 토해내고 싶었다.
여덟 살 아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자신이 구축한 城에 한없이 작아진 제 엄마를 초대했다. 눈물
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詩의 정원을 가꿔라 했다. 물도 정성껏 주고 거름도 부지런히 날라야 한다고 했다. 콩나무처럼 무
럭무럭 자라 열여덟 살이 된 아들. 무성해진 제 가지를 늘어뜨려 그 그늘 속에 세상의 힘든 사람을 쉬어가게 한다. 그 멋
진 나무를 눈부신 듯 바라본다. 울렁거림이 나뭇잎처럼 넌출거린다.
감사드려야 할 분들을 떠올려 봅니다.
치열함과 열정으로 시를 썼지만, 정작 봐 주는 이가 없다면 조금은 외로웠을 겁니다. 조금은 힘 빠졌을 겁니다. 이런 저
를 수면 위에서 숨 쉬며 살라고 선뜻 당선을 시켜주신 <웹진 시인광장> 관계자 분들, 김백겸 주간님 이하 심사위원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혼자 끙끙대는 제게 시의 취약성과 개성을 두루 지적해주신 구광렬 교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상
실감으로 방황하던 시기에 도반으로 만난 영남시. '영남시 동인'들의 시에 대한 치열한 열정, 그 고군분투는 저의 또 다른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식구같이 편안한 '詩作나무 동인'들, 감사와 사랑을 바칩니다. 건강하게 자라주어 너무
고마운 딸, 아들! 많이많이 사랑한다
ㅡ제1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賞 공모 심사 경위 및 심사평
김영찬(시인, 웹진 시인광장 副主幹)
신 인상 응모작을 심사하면서 새삼 의문이 든 것은, 어떻게 시인이 시인을 선별하여 시인으로 낳을 수 있
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알려진 바로는 신춘문예을 처음 도입한 일본은 이 제도를 폐지한지 오래된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아예 등단제도라는 것 자체가 없었고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연초마다 신춘문예로 들썩이고 300여개에 달하는 문예지들은 다투어 신인을 배출한다. 프랑스에서는 분명히
등단제도라는 게 없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출판을 통해 독자들의 심판을 받아 시인이 되거나 소설가가
되기도 하지만 독자나 평론가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도태된다.
그렇다면 신춘문예나 잡지사의 신인모집은 불필요한 제도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궁색하다. 시를 쓰는 사
람이 너무 많고 발표지면은 한정된 대한민국문단에서 시인으로서 원활한 활동을 하자면 어쩔 수 없는 통과의
례를 거쳐야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고질적인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제도적 모순을 충분히 개선할 방편
은 아니지만, 웹진 [시인광장]이 제1회 신인賞을 공모하게 된 것은, 재기발랄하고 발표욕 왕성한 신인이 숨
어 있다면 마땅히 발굴하여 발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이다.
웹진 [시인광장]은 향후 신인상 공모를 통해 새로이 등단하는 시인들을 정중하게 예우할 것이다. 물론, 유
력한 문예지에 적극 소개, 발표할 기회를 넓히도록 각별히 배려할 것이다.
*
불과 1개월여만의 작품공모 기간중에 30명에 달하는 신인이 보내온 작품은 150편. 우리는 응모작을 소중히 다루었다. 비
록 미등단 신인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응모자들로서는 최선을 다한 역작이므로, 한 편도 놓지도 않고 심사하기 위해 당초
6명이 중복 심사하기로 했던 방침을 바꿔 1차 예심 심사위원을 9명으로 늘였다.
1차 예심 심사위위원은 다음과 같다.
강신애ㅣ김명원ㅣ김미정 ㅣ 김영찬ㅣ 김명원ㅣ 이성혁ㅣ 이송희ㅣ 신진숙ㅣ 장무령 편집위원 등 9명.
9명의 심사위원들이 150편을 읽고 10편씩을 채택, 작품 위주(응모자 위주가 아닌)로 선정된 10편씩을 모아 다득점을
얻은 작품에 대하여 수상자를 내기로 심사기준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1차 심사에서 최다 득점을 얻은 작품은 순위별로 다음과 같다.
1.설국― (권기만)
2.귀―(양문희)
3.바그다드 카페―(장선희)
4.사랑, 십분 전―(장선희)
5.카레앙카―(장선희)
6.페르시아 전쟁―(장선희)
7.공백에 대한 짧은 단상― (한별)
8.비유의 정원― (허민)
위와 같이 작품 수로는 8편, 응모자 수로는 5명이 다득점자로 집계되었다.
여기까지의 결과는 심사위원 각자가 웹진 [시인광장]의 email로 접수시킨 결과를 다득점 순위대로 집계, 정리한 것이
다.
사진설명: 5명의 최종심사위원들이 유인물로 인쇄, 준비한 8편의 시를 갖고 인사동 카페 <詩人>에서 최종
심사를 했다. 최종심사는 지금까지의 결과를 무시하고 8편중에서 우수작을 새로 선정, 최다득표을 얻은 작
품을 낸 시인을 수상자로 뽑는 것이었다. 왼쪽부터 김영찬 시인(부주간), 이경호 평론가, 김백겸 시인(주
간), 윤의섭 시인(대전대 교수, 편집위원).
**
최종심을 본 심사위원은 다음과 같다.
우원호(웹진 [시인광장] 발행인 겸 편집인) ㅣ 김백겸( [시인광장] 주간) ㅣ 김영찬( [시인광장] 부주간)
ㅣ 이경호(평론가. 전 작가세계 및 세계사 주간) ㅣ 윤의섭( [시인광장] 편집위원. 대전대 교수) 등 5명.
여기서 최대득표 순위는 최종심사에서 다소 역전되었다.
1. 페르시아 전쟁―(장선희)
2. 설국― (권기만)
2. 바그다드 카페―(장선희) ---2위인 권기만의 <설국>과 동점
3. 비유의 정원― (허민)
4. 사랑, 십분 전―(장선희)
5. 카레앙카―(장선희)
6. 귀―(양문희)
7. 공백에 대한 짧은 단상― (한별)
8. (2위 동점이 둘이므로 8위 없음)
우리는 1차 심사집계에서부터 4편의 시가 모두 순위에 오른 장선희를 당선자로 정했지만 <설국>으로 처음에는 1위에
올랐던 권기만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명을 뽑자는 의견도 대두되었으나 1회인만큼 원칙대로 1명만 뽑자는 의
견이 주류를 이루어 그를 탈락시키게 된 것이다.
권기만의 시는 문장의 짜임새가 탄탄하다. 절제된 서사와 유연한 문체, 군더더기 없음, 으로 잘 조탁한 솜씨가 기성시인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설국> 외에 선외에 든 그의 가작 <누가 책을 몸으로 듣는가>에서 보여준 그의 풍부한 상
상력과 심오한 알레고리는 발군의 수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선외에 든 것은 심사위원들을 매
료시키는 <끌림>장치가 덜 된 탓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응모작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확 끌어당기는 <끌림>의 힘이 미약한 작품은 작품의 완성도가 높음에도 눈길을 못
끌어 탈락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양문희, 허민, 한별의 작품도 결코 만만치 않은 시력을 보여준다. 세 분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작품특성은 시가 지나
치게 주제 즉, 테마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너무 신경 쓰다 보니 시가 자유의지를 따라 넓
은 공간으로 나가지 못하고 주제의 틀 안에 갇힌 모범적인 시가 되고 말았다. 시는 말할 수 없는 것까지는 말할 수 있을
때 자유롭고 아름답다, 주제에서 멀리 빗나갔는가 싶은데 제자리로 돌아와 오히려 주제를 폭 넓게 감싸 안는 시를 대할
때 우리는 자유를 흠향하게 된다. 시의 행간이란 그러므로 그 어떤 공놀이 또는 그 어떤 게임도 즐기고 놀 수 있는 백지
위의 운동장이 되는 것이다.
장선희의 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다. 1, 2차 심사를 거치면서 이미 여러 심사위원들에 의해 충분한 검증을 받은 역작
들이다. 그의 시는 제목만 봐도 끌림이 있고 소재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스케일 또한 때로는 우람하고 때로는 섬세하며
폭 넓다. 제1회 수상자답게 더욱 좋은 작품으로 빛나게 될 신인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신춘문예♠문학상·신인상♠등단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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