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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질(甲의 부당행위)'에 치떨고 '乙死조약(불리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약)' 한탄… 乙의 삶은 고통 그 자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4. 3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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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질(甲의 부당행위)'에 치떨고 '乙死조약(불리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약)' 한탄… 乙의 삶은 고통 그 자체

[甲乙관계로 멍든 대한민국] -대기업 눈치보는 中企 대기업 부조금 상한선 정하자 5만원씩 봉투 10개에 넣어 보내… 계약서에 없는 서비스 제공도 -甲중의 甲 공무원 서울에 출장 온 세종市공무원, 대기업 직원에 "숙소 잡아달라" 공기업 팀장도 사무관에겐 乙 -乙의 반란 기내 女승무원 폭행사건, 대기업 임원의 부당한 '갑질'에 대중들 비판·조롱으로'응징' 조선비즈 | 김기홍 기자 | 입력 2013.04.30 03:07

 

 

 

5대 그룹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세종시로 근무지를 옮긴 공무원으로부터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업무 때문에 서울에 왔는데 저녁이나 한 끼 하자"는 전화였다. A씨는 선약이 있었지만 호출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공무원은 약속 장소에서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던 순간 황당한 부탁을 했다. "내일도 서울에서 업무를 봐야 하는데 잘 곳이 없다"며 숙소를 잡아달라고 했다. A씨는 "세종시로 근무지를 옮긴 이후 서울에 출장 오는 공무원에게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새 접대 코스가 됐다"고 말했다.

↑ /그래픽=이철원 기자

'갑'은 군림하고 '을'은 비위를 맞추는 '갑을'(甲乙) 문화는 개발 경제 시대를 거치면서 나온 뿌리 깊은 병폐다. 기업이 고도성장 과정에서 과실을 따 먹기 위해, 대기업은 관청에 청탁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납품에 매달리는 구조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목매는 중소기업의 비애

갑을 관계가 가장 두드러지는 현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다. 갑을 관계는 계약서에 문자로 명확히 규정되지만, 을은 계약서에 없으면서 사업과도 전혀 무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넷에선 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약을 '을사(乙死)조약'이라고 부른다.

소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C대표는 최근 대기업 직원의 결혼식에 가면서 봉투 10개를 준비해 갔다. 최근 이 대기업이 내부적으로 부조금을 5만원 이상 받지 못하도록 임직원 윤리 규정을 강화하자, 봉투 10개에 직원들의 이름을 쓰고 5만원씩을 넣은 것이다. C대표는 "부조금을 달랑 5만원만 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부조금 쪼개기'를 했다"고 밝혔다.

수도권의 한 중견 건설업체의 D대표는 얼마 전 핀란드에서 사우나 시설을 수입해 들여왔다. 이 사우나가 설치된 곳은 거래하는 대기업 임원의 집이었다. D대표는 "그 임원이 최근 이사를 한 뒤 술자리에서 부인이 '사우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면서 "이 정도 말귀도 못 알아들으면 이 바닥에서 사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갑 중의 갑"… 군림하는 공무원

대기업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담당하는 E씨는 얼마 전 낯선 이름이 적힌 청첩장을 받았다.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은 결과 오래전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명함을 주고받은 공무원의 청첩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E씨는 "청첩장이 세금 고지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성의는 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은 어디서든 갑이다. 대형 증권사의 50대 영업 담당 임원은 금융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공기업 40대 팀장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이 임원은 약속 당일 30대 정부 사무관이 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공기업 팀장이 "식사를 한번 모시겠다"며 사무관을 부른 것이었다. 졸지에 저녁 약속은 50대 대기업 임원이 40대 공기업 팀장을 접대하고, 40대 공기업 팀장이 30대 사무관을 접대하는 자리가 됐다.

◇'을의 반란' 움직임도

을이 갑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갑과 을 간 힘의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납품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거래 관계를 끊긴 중소기업은 한순간에 망하게 되고, 공무원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민간인이 쉽게 알기 어려운 규정을 내세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갑을 관계의 오랜 폐단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가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기존 갑을 관계를 뒤집는 '을의 반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포스코에너지 임원 A씨의 '기내 승무원 폭행' 사건에서 보인 대중의 반응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은 거의 뭇매에 가까운 수준으로 A씨를 비판하고 심지어 조롱했다. 이는 비즈니스석 승객 대(對) 승무원이라는 확실한 갑을 관계에서 발생한 부당한 '갑(甲)질'에 대한 집단 응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갑을 문화는 우리의 성공 지향적인 수직적 문화가 만든 대표적 병폐"라면서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우리 사회가 수직적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로 바뀌어가는 시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갑을 관계(甲乙關係)

'갑'과 '을'은 원래 계약서 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다. '갑은 을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식이다. 통상 '갑'이 '을'보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당사자일 경우가 많다. 여기서 권력적 우위인 쪽을 '갑', 그렇지 않은 쪽을 '을'이라 부르며 '갑을 관계를 맺는다'는 표현이 생겨났다. 지금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업주와 종업원, 상사와 직원, 고객과 서비스업체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