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제1회 《불교문예》 작품상 ∥ 심사평】
우울한 풍자, 자본의 강을 건너는 법
―하종오, [헌옷 도둑]
이은봉
하종오의 최근 시들은 세속도시와 가족(집ㆍ고향ㆍ자연)이 비교, 대조되는 가운데 세속도시에서 가족(집ㆍ고향ㆍ자연)으로 선회하는 심리적 경향을 보여준다. 전자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고, 후자는 연민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의 이런 경향은 관심을 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판의 대상은 자본주의 세속도시의 비인간화이고, 연민의 대상은 점차 사라져 가는 가족(집ㆍ고향)의 가치이다. 따라서 하종오의 최근 시들은 자본주의적 삶 자체의 비속화를 문제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밀한 구성, 완벽한 리듬으로 전개되는 그의 최근 시들은 현 단계 이 시대의 삶과 시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종오의 최근 시들은 표현기법의 측면에서도 자못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인식의 면에서 그것은 대위적 수사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고, 문체의 면에서 그것은 대등절을 바탕으로 한 중문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하종오의 이런 표현기법의 탐구는 얼마간 이분법적 세계관 토대로 하고 있어 우려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 때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갈수록 양극화의 정도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문제 삼기 위해 채택되고 있다고 해야 옳다. 지난 1980년대에 민족ㆍ민중시 운동에 앞장을 서왔던 그로서는 오늘의 사회가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는 것을 어떤 방식이든 견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 대한 근심과 우려가 그렇게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하종오가 최근의 시를 통해 보여주는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로 힘들어 보인다. 인간 본연의 순수와 무구를 잃지 않는 삶을 건설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삶과 사회에 낮고 작고 조그맣게 벼린 칼을 지속적으로 들이밀고 있다. 이런 얘기는 그의 시가 1980년대 민족ㆍ민중시의 연장선상에 서 있지만 결코 높은 목청만을, 허황된 이데올로기만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낮고 작고 조그만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는 오늘의 삶에 대한 그의 심미적 검토는 매우 개성 있는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불교문예 작품상〉당선작 「헌옷 도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 세속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세한 일들을 진실하고 차분하게 추적하면서도 독자들이 이런저런 깨달음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매우 섬세하고 정밀하게 시어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 그의 이번 당선시 「헌옷 도둑」이다. 이 시에는 세 부류의 인간군이 등장한다. 하나는 화자인 시인 자신이고, 둘은 “어패럴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고, 셋은 헌옷을 “빈국으로 수출한다는 수거업자”이다. 이들 세 부류의 인간군에서 시인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남녀들이다. 자신이 만드는 옷은 입지를 못하고 버려진 헌옷을 훔쳐 입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이 담아내는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다.
여기서 복합적이라는 말은 그가 단순히 연민의 정서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헌옷 수거함에 “단 한 벌도 쑤셔 넣어본 적 없는” 것이 그이기도 하지만 “헌옷 수거함에 갇히고 싶도록 남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헌옷과 동일시되는 동시에 외국인 노동자들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 시인이거니와, 이는 “얼른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가 뺐”는 데도 “내가 입은 옷보다 새것 한 벌이 잡혀 나왔”다는 표현이 잘 말해준다. 이에는 무엇보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지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시인의 넓고 깊은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이런 시인에게 “주말 낮에만 와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남긴 옷가지만 트럭에 실”어가는 헌옷 수거업자가 “오며가며 잘 지켜봐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은 풍자를 넘어 오늘의 현실 전반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종오의 당선시 「헌옷 도둑」은 이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현실과, 그에 따른 시인의 복잡하고 미묘한 정서를 담고 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시는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 다시 말해 大慈大悲한 부처님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널리 읽혀 조금이라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데 기여하기를 빈다.
골목 모퉁이에 놓여 있는 헌옷 수거함은
뚜껑 잠긴 채 투입구만 뚫려 있었다
겨우내 헌옷만 입고 다니는 나는
이따금 갇힐까 싶어 종종걸음쳤다
평일 밤에는 슬그머니 긴 집게를 넣어
투입구로 몇 벌씩 빼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층 어패럴 공장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남자들은
긴 바지와 셔츠만 골라서 가져가고
지하 어패럴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자들은
예쁜 속옷만 골라서 가져갔다
빈국으로 수출한다는 수거업자는
주말 낮에만 와서 자물쇠를 풀어 뚜껑 열고
그들이 남긴 옷가지만 트럭에 실으면서
나에게 오며가며 잘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단 한 벌도 쑤셔 넣어본 적 없는 내가
헌옷 수거함에 갇히고 싶도록 남루하던 날
얼른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내가 입은 옷보다 새것 한 벌이 잡혀 나왔고
그 하루가 싱긋 웃으면서 지나갔다
―하종오, 「헌옷 도둑」,《불교문학》 200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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