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벽*
이성부
내 젊은 방황들 추슬러 시를 만들던
때와는 달리
키를 낮추고 옷자락 숨겨
스스로 외로움을 만든다
내 그림자 도려내어 인수봉 기슭에 주고
내 발자국 소리 따로 모아 먼 데 바위 뿌리로 심으려니
사람이 그리워지면
눈부신 슬픔 이마로 번뜩여서
그대 부르리라
오직 그대 한몸을 손짓하리라
*숨은 벽 서울 삼각산에 있는 바위산의 하나.
숨은 벽 2
저를 가두는 것이 풀려나는 일
숨는 것이 오히려 드러나는 일
나 여기 있어 온종일 외로워도
나 여기 눈 부릅떠 지켜보누나
찾아드는 발길 드물어 고요하고
내 몸 부대끼는 무리들 없어
내 아직 싱싱하구나
어느 해 장마철 부슬비 오던 날
그대 혼자 나에게 이르러서
앗차 미끄러지는 모습 보았지
투덜투덜 한숨 돌리고
기어이 다시 오르는 꼴 보았지
나를 타고 넘어 혼자 걸어가던 그대
내 뿌리 스스로 뽑아들고
그대 따라가 그대 방에 갇혀서야
비로소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나를 보겠구나
숨은 벽 3
그대 거기
붙박혀 움츠려 있음은
오가는 흰구름 따라 눈길 보내거나
매서운 칼바람에 옷깃 여미거나
꽃 피고 지고 새 울어서
단풍 물들어서
흐르는 시간으로
그냥 흘러가는 것들 내버려두는 뜻은 아니다
그대 거기
그냥 주저앉아 있음 아니다
타박타박 그대 외로움 세상을 밟고 간다
―시집『야간산행』(창장과비평사, 1996)
7년 동안 암 투병하던 이성부 시인이 향년 70세로 2012년 2월 28일 별세했다고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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