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산 ♠ 시

숨은벽 / 숨은벽 2 / 숨은벽 3 / 이성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9. 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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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벽*


     이성부

 


    내 젊은 방황들 추슬러 시를 만들던
    때와는 달리
    키를 낮추고 옷자락 숨겨
    스스로 외로움을 만든다
    내 그림자 도려내어 인수봉 기슭에 주고
    내 발자국 소리 따로 모아 먼 데 바위 뿌리로 심으려니
    사람이 그리워지면
    눈부신 슬픔 이마로 번뜩여서
    그대 부르리라
    오직 그대 한몸을 손짓하리라

 

 

 

*숨은 벽 서울 삼각산에 있는 바위산의 하나.

 

 


      숨은 벽 2

 

 

       저를 가두는 것이 풀려나는 일
       숨는 것이 오히려 드러나는 일
       나 여기 있어 온종일 외로워도
       나 여기 눈 부릅떠 지켜보누나
       찾아드는 발길 드물어 고요하고
       내 몸 부대끼는 무리들 없어
       내 아직 싱싱하구나
       어느 해 장마철 부슬비 오던 날
       그대 혼자 나에게 이르러서
       앗차 미끄러지는 모습 보았지
       투덜투덜 한숨 돌리고
       기어이 다시 오르는 꼴 보았지
       나를 타고 넘어 혼자 걸어가던 그대
       내 뿌리 스스로 뽑아들고
       그대 따라가 그대 방에 갇혀서야
       비로소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나를 보겠구나

 

 

 

       숨은 벽 3

 

 

       그대 거기
       붙박혀 움츠려 있음은
       오가는 흰구름 따라 눈길 보내거나
       매서운 칼바람에 옷깃 여미거나
       꽃 피고 지고 새 울어서
       단풍 물들어서
      흐르는 시간으로
      그냥 흘러가는 것들 내버려두는 뜻은 아니다


       그대 거기
       그냥 주저앉아 있음 아니다
       타박타박 그대 외로움 세상을 밟고 간다

 

 


   ―시집『야간산행』(창장과비평사, 1996)

  

 

 

7년 동안 암 투병하던 이성부 시인이 향년 70세로 2012년 2월 28일 별세했다고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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