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껍질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시집『늦게 온 소포』(민음사, 2000)
‘소포’ 대신 ‘택배’라는 말이 대체된 지 불과 몇 년 되었던가. 시 속에 등장하는 ‘소포’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접하니 익숙하여 정겨운 것이 아니라 촌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아날로그시대의 유물 같기도 하다. 잊혀져가는 단어 하나도 이렇게 먼 부재 속의 기억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빠르게 변모해가는 이 시대를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소포’라는 단어가 사장이 되어가는 것처럼 이 시대의 어머니의 상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시에서처럼 무조건으로 퍼주는 어머니도 없고 개인주의를 몸으로 체득하고 자라난 세대의 자식들도 어머니의 일방적인 그런 희생을 감읍하지 않는다. 우리 어머니들도 이제는 다 안다. 자식이 적금이고 보험인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어머니의 무조건적이 희생 속에 자라난 세대들에게 어머니는 늘 마음의 고향이었다. 객지에 나가 고생이 되면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고 힘들고 어려울 때면 어머니의 고생을 생각하면 참고 견디었다. 그런 어머니를 둔 시인들은 어머니의 희생을 눈물겨워하며 시를 썼고 수많은 명시들이 탄생을 했다.
그렇다면 차세대들은 어머니에 대한 시를 어떻게 쓸까. 문득 궁금해진다...
어머니 시 모음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44201
ㅡ출처: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 / 도종환 시배달 200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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