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이문재, 「노독」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물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 시 _ 이문재 이문재는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등이 있다.
▶ 낭송 _ 홍서준 배우. 뮤지컬 『우리 동네』, 『위대한 캐츠비』 등에 출연.
배달하며
오래 전 읽은 시인데, 다시 읽어도 가슴이 아릿해집니다. 여수(旅愁)의 멜랑콜리가 날카롭게 가슴을 베기 때문이겠죠. 길 위에 있는 자는 어두운 세상에서 스스로 제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하지요. 더러는 몸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더 올리기도 하겠죠. 하지만 “함부로 길을 나서/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에는 감형(減刑)이 없습니다.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여독(旅毒) 품고, 다시 길을 나서야 하니까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마음의 오지』(문학동네)
▶ 음악_ 최창국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그림♠음악♠낭송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8>물의 결 / 박우담 (0) | 2015.05.29 |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7>아아, / 박소란 (0) | 2015.05.27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6>제4과/김형영 (0) | 2015.05.25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격렬비열도/박후기 (0) | 2015.05.23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5>우체통에게/조수옥 (0) | 2015.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