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본 신문·건강정보>/음식·요리·건강 정보

무교 (巫敎)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6. 1. 23. 20:32
728x90


무교 (巫敎)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무교 (巫敎)/최준식/모시는사람들

 

최준식: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사)한국문화표현단 이사장, 종교문화연구원 이사장, 한국죽음학회장,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이다. 저서는<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1,2,3> <최준식의 한국종교사 바로보기> <한국의 민간신앙>등 다수가 있다.

 

종교란 그 추구하는 목적이 아무리 초세간적이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 있는 한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슬람교나 그리스도교가 역사적으로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고서도 정통의 신앙으로 간주되는 것은 그들이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확인할 것도 없이 거개의 한국인들은 무교를 두고 종교가 아닌 습속에 불과하며 게다가 전근대적인 미신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 무당종교를 지칭할 때에도 '교'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속'이라는 낱말을 쓴다. 그래서 '무속'이라고 부른다. 무속이라는 단어는 조선시대에 사대부와 같은 기득권 세력들이 무교를 폄하하여 저속하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미신과 소위 '正信'을 구별하지 않는 종교학에서는 무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불교나 그리스도교를 '불속' 혹은 '기독속'이라고 브르면 그게 가당하기나 한 생각이겠는가? 불교나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이렇게 부르는 일이 불가하다면 마찬가지로 우리의 '무속'도 당연히 '무교'라 불러야 할 것이다. 무교라는 호칭외에도 한양대학교의 조홍윤교수처럼 '무'라고만 부르자고 하는 학자가 있는데 이 표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무교는 미신이라 생각하고 그리스도교나 불교는 그런 '저등한' 종교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고등한' 종교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고등 종교를 믿는 자신은 이 무당 종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근대적인 인간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무당은 이상한 귀신을 섬기는 한참 덜 떨어진 기괴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상종해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 여긴다. 물론 그러다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큰 문제가 생기면 무당에 대해 평소에 생각하던 것은 다 던져버리고 무당에게 달려 가지만 말이다.

 

세습무쪽은 더 다양하다. 가령 충청도에서 하는 굿은 '법사'라 불리는 남자 무당이 앉아서 경을 읽는게 주 된 내용을 이룬다. 그래서 강신무들이 하는 굿에 익숙한 사람에게 충청도의 '앉은 굿'은 굿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세습무하면 전라남도의 진도에서 행해지는 굿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굿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잘 알려진 것처럼 '씻김굿'이다. 이 굿은 망자를 천도하는 굿으로 서울지역에서 하는 망자굿 혹은 한자말로 死靈祭의 일종인 '새남굿'과는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 굿을 지내는 목적은 같지만 내용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또 세습무가 하는 굿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제주도 굿이나 동해안 별신굿을 들 수 있다. 나는 지금껏 제주도굿을 딱 두 번 보았는데 서울굿에 익숙한 나로서는 영 생경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동해안굿은 강릉단오제란 이름으로 아예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런 굿들이 한국 정부가 지정한 중요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신도가 신령과 교통하려면 반드시 무당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무당을 사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사제를 통해서만이 신에게 다다를수 있다는 것과 구조를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교와 그리스도교와 같은 유신론적인 종교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 두 종교는 다른 점이 많겠지만, '그들이 신봉하는 신이 어떤 존재냐." 혹은 '사제는 어떤 성향의 사람이냐.'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만 다른 설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그런데 왜 우리는 그리스도교는 정통종교이고 무교는 미신이라고 하는 걸까? 민간 불교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불교도 민간신앙의 차원에서는 그 근본목적이 신자가 승려라는 사제계급을 통해 이 우주의 최고신이라 여기는 부처님에게 복을 받으려는 것이니 그 구조가 하나도 다를바가 없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불교를 두고 미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무식한 일부 개신교도들은 불교를 우상숭배라 매도하지만) 왜 이런일이 벌어졌을까?

 

굿은 하루 종일 하는 것이라 무당 한사람이 온 날을 다 노는 것은 불가능하다. 굿이란 보기에 따라 노래와 춤이 그 핵심 내용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뮤지컬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판소리를 '일인 오페라'라고 하듯이 굿도 '일인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굿은 그냥 뮤지컬이 아니라 신과 교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성한 뮤지컬이다.....굿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정교하고 수행하기 힘든 의례이다. 굿은 무당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격식이나 체계가 확고하고 내용이 튼실하다. 굿의 전체절차를 보면 보통 열거리 이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을굿 혹은 별신제같은 공동체 굿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며칠씩 잡고 하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많은 거리를 논다. 그러나 개인굿은 대체로 열두 거리를 상회하는 수의 거리를 논다.

 

굿의 전개문제와 연관해서 주목할 게 있다면 굿에서는 큰 신령부터 모시고 말미로 갈수록 덜 중요한 신령을 모신다는 것만 말하고 싶다. 거리의 기본구조를 살펴보면 대체로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을 초치하고(請神), 그 신을 즐겁게 해서 공수(계시)를 받고 (娛神), 신을 보내는 과정(送神)이 그것이다. 이 세 단계에서 각각 무당은 노래와 춤으로 신령을 모신다음 즐겁게 해주고 다시 보내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래서 '굿을 한다'는 표현과 함께 '굿을 논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각 거리마다 무당은 격렬한 춤을 춤으로써 엑스터시 상태로 들어가 신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입을 빌어 신의 말을 전하는데 이것이 굿의 핵심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 거리에는 불러야 할 노래나 춤, 그리고 의상 등이 모두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굿 가운데 이런 형식이 가장 잘 잡혀져 있는 굿은 무당이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가 모시는 신령)을 위해서 하는 '진적굿'이다.

 

굿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이 시끄러울 수박에 없다. 특히 '챙챙'거리는 제금 소리는 귀에 거슬릴 수 있다. 전통 시대에 마을에서 굿이 벌어지면 그야말로 축제판이 벌어져 온 동네가 들썩거렸지만 이제는 이런 촌락공동체가 사라졌으니 굿판은 더 이상 그런 기능을 할 수가 없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같은 격언은 이전에나 어울리지, 지금 같은 도시 산업사회에서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굿판에서 나는 음악소리가 옛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소리였겠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소음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굿은 수천 년의 전통 속에서 발전을 거듭해 완성도가 지극히 높은 종교의례가 되었는데 그것을 받아주는 현실은 그렇지 못해 양자의 간극이 너무 크게 된 것이다.

 

굿에는 참으로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좋은 운이 들어 오게하는 '재수굿'과 대표적인 死靈祭인 '오구굿'은 가장 많이 연행되는 굿으로 꼽힌다. 이외에도 앞에서 본 진적굿이 있고 병 고칠 때 하는 병굿, 환갑이나 결혼식처럼 집안에 기쁜 일이 있을 때 하는 여탐굿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종류의 굿이 있다. 이 가운데 병굿은 상류층에서는 우환굿이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불리고 기층에서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푸닥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앞에서 본 굿들이 개인이나 가족에게 한정 된 것이라면 마을단위로 하는 굿들도 많다. 강릉 단오제나 은산 별신굿, 하회 별신굿 등이 그것인데 모두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하는 굿들이다. 이런 굿들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며칠에 걸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가운데 은산별신굿(祭)은 특이한데 이 굿은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한 복신과 도침을 기리기 위해 하는 굿으로 3년에 한번씩 한다고 한다. 굿을 하는 전 기간이 15일이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알 만 하겠다. 이렇게 유명한 마을굿 말고도 우리나라의 대부분 마을에는 도당굿등으로 불리는 마을굿이 있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마을 축제의 중심에는 항상 무당이 있었다는 것이다. 개인굿 가운데에서는 특히 오구굿을 주목하고 싶은데 이 굿은 다른 어떤 종교의 사령제보다 그 기능이 뛰어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가족들은 경황이 없어 그 영혼과 제대로 이별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은 항상 불효한 것 같아 감정의 찌꺼기가 남기 마련이다. 오구굿은 그렇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부모의 혼을 불러 제대로 이별하기 위한 의례인 것이다. 이 굿의 하이라이트는 부모의 혼이 무당에게 들어왔을 때이다. 이 때 부모의 영혼과 자식들은 서로에게 하지 못한 말을 나누면서 감정의 앙금을 털어낸다. 특히 자식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다하지 못한 효를 그 기회를 통해 탕감받는 효과가 크다. 그렇게 속을 털어 놓아야 자식들은 더 이상 죄의식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오구굿은 아주 상징적인 순서로 끝이 나는데 그것은 부모의 넋을 넋전 상자에 싣고 저승으로 가는 것이다. 이때 이 부모의 혼을 데리고 가는 신령은 그 유명한 '바리공주'이다. 이 신령은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있어 이런 대단한 신령이 자신 부모의 혼을 데리고 저승길로 간다고 생각해 자식들은 안심하게 된다. 저승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굿이 끝나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질서가 잡히고 모두들 정상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죽은 자는 저승으로 가고 산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오구굿의 이런 면은 다른 종교 의례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아주 뛰어난 면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부모 잃은 자식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행위는 승려나 목사들에게서는 발견 하기 힘들다. 그들은 경건한 의례를 통해 망자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을 달래 주는데 이것은 가족들의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나는 이런 면에서도 무교의 비주술적인 면을 본다. 무당이 미신 신봉자라면 이렇게 힘든 일을 자처해서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계 신령들은 어떤 정해진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달래고 재물을 많이 바치면 복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협박을 하는등 신령의 성격에서 일관 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한국의 무교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에 편재되어 있는 원시신앙을 보면 우리 무교에서 보이는 것과 비슷한 면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남미의 '부두 voodoo 신앙'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런 민간신앙에서는 신을 기쁘게 하려고 할 때 소위 고등종교에서 말하는 덕목인 사랑이나 지혜의 실천을 통해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신에 신에게 철저하게 복종할 것을 강조하고 금기나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그런데 다시금 주의 할 것은 이런 모습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나 불교 신자들에게서도 왕왕 발견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유대교이지만, 구약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아들인 이삭을 바치라고 으름장을 놓는 야훼 이야기 역시 이 예에 속한다고 하겠다. 여기에는 사랑이나 정의보다는 복종과 흥정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종교란 무엇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거대한 기성종교의 입장에 서서 方外의 기층종교를 자기들 시각에서 사정없이 재단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제국들이 피식민지 국가들을 마음대로 유린했듯이 큰 종교가 작은 종교들을 마구 저등한 것으로 몰아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제국적인 시각에 함몰 된 한국인들이 자기의 근본 신앙인 무교를 부정하고 있는 데에 있다. 그래서 거개의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본 이유를 가지고 무교가 저급한 미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저런 무당 종교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은 이 무교가 역사적으로 한국인과 지극히 가까운 종교였고 지금도 우리와 아주 밀접한 종교현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조선 시대 중심으로 보면, 상층부의 아주 얇은 유교적인 엘리트 선비문화를 제외하고 다른 문화들은 결국 무교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한국인의 근원신앙이 무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추세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종교를 다 받아들인 것 같지만 가장 중국적인 도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도교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받아 들여도 극히 부분적으로 받아 들였고 그것 역시 자기네들의 민간신앙과 섞어 버렸다. 그래서 나중에는 중국적인 요소와 토착적인 요소를 구별하기 힘들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비근한 예로 옥황상제를 들 수 있는데, 많은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 온 민담을 통해 이 신이 토착적인 신으로 알고 있지만 이 옥황상제는 명백하게 중국 도교의 天神이다. 한국이나 일본이 다른 것은 중국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이면서 가장 중국적인 종교인 도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바로 양국에 토착 종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도교가 맡아서 하는 기능을 한국에서는 무교가, 일본에서는 신도가 한 것이다. 도교와 무교, 그리고 신도는 삼국의 가장 대표적인 민간신앙으로, 그 외양은 다르지만 작은 신들을 신본해서 재물과 건강같은 가장 세속적인 행복을 기구한다는 점에서는 그 속성이 같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동북아 삼국 가운데 중국이나 일본은 자기들의 기층종교를 인정한 반면, 한국은 철저하게 그것을 무시하고 미신으로 매도했다는 데에 있다. 한국인들은 자국의 전통을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무교의 현재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들의 뿌리를 무시한 것이다. 자신들의 뿌리를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를 폄하 한 것이다....한국 문명의 시조를 이룬 단군이 무당이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진부한 설이 되어 버렸다.....부여나 고구려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신라의 경우는 그 지배층이 무교와 직결 되어 있어 우리의주목을 끈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문헌에 무당이라고 씌어 있지는 않지만 심증적으로는 무당 출신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증거가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박혁거세가 죽은 뒤 그의 몸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섯 개로 나뉘어 떨어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시베리아 샤먼들의 신병 체험을 상기시킨다. 이에 비해 그의 아들인 남해 차차웅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명확하게 무당이라 명시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次次雄'이 신라말로 무당을 뜻한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차차웅은 또 慈充이라고도 했다는데 여기서 무슨 한자를 썼는가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차차웅이나 자충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자충이 현대에서 불교 승려를 지칭할 때 쓰는 '중'이라는 말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그런가하면 학자에 따라서는 신라의 지배자들이 무당이었을 것이라는 증거자료를 그들이 쓴 왕관에서 잡아내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신라의 금관을 무교와 연관시켜 설명하는 설이 지배적이었는데 최근 이에 대해 매우 강력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정수일 교수에 따르면 인류가 현재 소지하고 있는 고대 금관은 12개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중 반 이상이 신라 것이라고 한다. 신라금관은 아름다움의 면에서 다른 금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이 시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금관의 미적인 면보다 디자인이다. 신라금관의 앞부분은 한자의 出자를 닮은 나무의 형태로 되어 있고 뒷부분은 사슴의 뿔을 닮은 장식으로 되어 있다.한국고대문화에 정통한 미국출신의 미술사학자 코벨은 이 나무가 시베리아 무당들이 신목으로 간주한 자작나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작나무는 시베리아 지방에 흔한 나무라고 하는데 그는 신라 금관에는 나뭇가지가 7개인 것에 주목했다. 시베리아 샤먼들은 하늘을 7층으로 나누는데 금관의 나뭇가지가 7개인 것은 바로 이것을 표상화 한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것은 샤먼 자신들이 이 7층이라는 가장 높은 하늘에서 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고 이것을 자신들이 쓰는 관에 표시한 것이라는 것이다. 코벨은 더 나아가서 백제왕이 일본 왕에게 하사해 그들 왕실의 神器가 된 七支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지금까지는 이 설이 학계에 지배적이었지만 이 설에 반대해서 최근 대두 된 이론은 나름대로 아주 탄탄한 토대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사람은 임재해 교수로 저서인 '신라 금관을 밝힌다:지식산업사,2008'에서 조목조목 위의 설을 비판하고 있다. 이 설에서 가장 설득력있는 주장은, 금관과 닮았다고 하는 시베리아 샤먼의 관은 18~19세기라는 극히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라 5~6세기에 만들어진 금관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그리고 이 금관을 사용한 시대에 신라는 이미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을 떄인데 아직 국가체제가 잡히지 않은 시베리아 지방 샤먼의 모자를 쓸 이유가 없다는 이유도 제시한다...오히려 신라 문화가 북쪽 지방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이렇게 추론하는 것이 외려 합리적이라는 것이다....임교수의 주장은 금관의 앞에 있는 나무 문양은 시베리아의 나무를 본 뜬 것이 아니라 김씨 왕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의 나무를 본뜬 것이라는 것이다. 금관은 미추왕이나 내물왕처럼 초기의 김 씨 왕들의 무덤에서만 나오는데, 이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시조인 김알지를 신격화하기 위해 신비한 숲인 계림의 나무를 금관에 모티프로 차용 한데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김씨가 석씨나 박씨를 제치고 새로 왕이 되면서 자신들의 가계를 뽐내기 위해 이렇게 관을 성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금딱지들은 문자 그대로 나뭇잎을 형상화한 것이고 뒤에 있는 사슴뿔의 모습이라고 한 것도 사슴뿔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나무라는 것이다.

 

그러다 한국인들이 경제개발에 성공하고 자신들의 과거 전통을 돌아 볼만한 여유가 생기자 서서히 무교는 한국 사회 전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당의 숫자가 늘어난 것은 말할것도 없고 서울의 굿당 숫자가 다시 수십개로 늘어났다. 한국 무교사 최초의 사건으로 생각되는데 무당들의 조직체가 생겨났다. 대한敬神연합회. 현재 본연합회만도 회원이 10만이 훌쩍 넘는다고 하니 무당 전체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 틀림없다. 이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무당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로 잡아서 무당의 숫자가 20~30만 정도는 되지 않을까하고 추산해 보는데 사실 무당의 정확한 숫자는 알길이 없다. 지금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성직자는 목사인데 그들도 10만을 넘지 못한다. 이에 비하면 변변한 조직도 없는 무당이 이렇게 많은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에서 정하는 인간문화재에 무당이 선정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한국 무교사에서 최초로 무교가 공식적으로 법적인 인정을 받는 사건일 것이다. 물론 종교로서 무교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무당의 예술가적인 재능을 인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 벌어 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무형문화재로 10개 이상의 마을굿 (혹은 별신제)이 지정된 것도 획기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에 세계적인 (구전) 무형 걸작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그 행렬이 심상치 않다. 유네스코에 등재 된다는 것은 지역의 특수성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을 띈다는 것을 의미하며, 더 이상 그 나라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인류가 같이 보호해야 하는 뛰어난 문화자산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 무교의 대표적인 축제가 등재되었다는 것은 한국의 무교가 전 세계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문화로 인정받은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기에는 한국의 유산 중 3개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 언급한 단오제를 포함해 종묘제례(제례악)와 판소리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종묘제례는 유교와 직결되어 있는 것인 반면, 단오제와 판소리는 무교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판소리는 남도 굿판인 시나위 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악사들이나 무당들이 노래하던 것이 다른 많은 요소와 섞이면서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보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전통예술이 무교와 매우 연관성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한국의 사물놀이도 굿에서 파생한 것이다. 사물놀이는 농악에서 나온 것이고 농악은 마을굿을 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니 모두 굿과 깊은 관계 있는 것이다.

 

통상 그리스도교의 신은 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구약(구약은 원래 유대교의 성전이지, 그리스도교의 것이 아니고 구약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교 중심적이라 써서는 안 되지만 관례상 그냥 따랐다. 그래서 종교학에서는 구약대신 '히브리 성서 혹은 바이블'이라고 부른다) 에 나온다.....이러한 생각을 정리해 보면, 이 신화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마치 인간인 우리가 무엇을 만들 때처럼 신이 주체가 되어 객체인 이 세상을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생각에는 아주 심각한 오류가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신은 전체로 정의되기 때문에 신에게 객체란 있을 수 없다. 만일 이 세상과 대립되는, 혹은 이 세상 바깥에 있는 타자로서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유한한 이 세상과 대면할 수 있는 존재는 유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유한하니 그 대상도 유한해야 한다. 그런데 신은 무한한 존재라고 했다. 만일 신을 이렇게 세계 밖에서 세상을 창조한 존재로 생각한다면 그런 신은 유한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런 신은 진정한 신이 아니다. 그런데 대체로 일반 신자들은 이런 신을 자기들이 믿는 신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일반 신자들이 생각하는 신은 허구의 산물들이라는 것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일반 신자들이 생각하는 신은 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상에는 여러 정의가 가능한데 절대 실재가 아닌 것을 절대 실재로 간주하는 것도 포함된다. 일반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상정해 놓고 그것에게 절대성을 부여하니 이것이야말로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는 것이다. 이 발언이 과격하게 들리겠지만 이론적으로는 틀릴 게 없다.신은 어떤 객체의 외부에 존재할 수 없는데 신이 외부에 있다고 하고 그것에 대고 빌어대니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일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런 학술적인  것까지 생각하고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할 때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것은'성경'이라고 불리는 바이블이다. (필자는 그리스도교의 경전을 결코 '성경'이나 '성서'같은 단어로 부르지 않는다. 성경이나 성서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에 특정 종교에만 국한해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교의 경전만을 성경이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인류에게는 그리스도교의 경전만이 유일한 경전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태도는 누누이 이야기한 종교제국주의적인 시각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굳이 바이블을 번역한다면 '기독경'이 되어야 할 것이다)....쉽게 말해서 이 바이블은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진리 그 자체가 된다. ....이들은 바이블이란 성령이 복음서를 쓴 記者의 손을 빌려 썼기 때문에 오류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여담이지만 바이블이 성령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은 신학을 제대로 한 학자들은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바이블은 다른 여느 책처럼 철저하게 인간의 손에 의해 씌어졌기 때문이다.그래서 복음서 간에도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묘사가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바이블에 씌어 있는 예수 이야기가 모두 참인줄 알지만 예수가 실제로 한 이야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예수의 행적을 담은 복음서를 보면 그 양이 적지 않지만 그 가운데에서 실제로 예수가 한 말을 추려보면 A4한장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그리스도교의 상황에 비해 볼 때 불교의 경우는 조금 단순하다. 붓다는 처음부터 브라만 같은 신적인 존재를 거부했기 때문에 빌고 말고 할 것이 없다. 붓다는 오로지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거해 모든 것을 판단하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가면서, 특히 대승불교로 발전하면서 양상이 크게 바뀐다. 붓다 자체가 거의 신적인 존재로 격상되었고 가상의 존재인 보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교도들은 자신들의 소원을 빌 대상으로 붓다나 보살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붓다는 특히 두가지 조건만 빼놓고 그리스도교나 이슬람의 신과 똑같은 위치를 획득하게 된다. 두가지 조건이란 우주의 창조주라는 것과 인간 사후에 죄를 판정하는 심판자를 말한다.....상황이 어떻든 붓다라는 존재는 신도들의 모든 소원을 풀어 주는 슈퍼맨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아주 다양한 불공법이 등장하게 되었고 불교는 원래의 자력적인 신앙에서 타력적인 신앙으로 변모하고 만다......이렇게 보면 대중불교, 즉 거개의 불교도들이 생각하는 불교는, 좀 기한이 지난 종교학 용어지만 '다신교' 혹은 '일신교'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다신교란 말 그대로 수많은 신이 있는 종교를 말하고, 일신교란 기본적으로는 다신교와 비슷하지만 이 수많은 신 가운데 수장에 해당하는 신이 있는 경우에 쓰는 용어이다. 불교를 다신교라 한다면 수많은 붓다들과 수많은 보살들을 동등하게 생각해서 이 모두를 같은 급의 신령으로 간주할 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반면에 일신교라 한다면 이 수많은 신령들을 통솔하는 두목으로 석가여래를 지목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틀릴 것이 없는 게, 대중들에게 있어 불교라는 종교는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에게 빌어 소원성취하는 것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불교의 본령과 어긋나도 한참을 어긋나는 것이다.그리스도교는 그래도 교리에 신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신에게 빌어 복받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불교의 경우에 이렇게 불보살들에게 비는 것은 근본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무교도들이 신봉하는 신령이나 불교도 혹은 그리스도교들이 믿는 불보살 혹은 신이 모두 신도들이 상상속에서 만들어 낸 허구의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차피 다 허구의 존재를 신봉하는 것이라면 무교만 두고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짚어 보아야 한다. 만일 위에서 본 것 같은 양태의 신앙을 우상숭배라고 정의한다면 불교나 그리스도교도 모두 우상숭배가 되어야 한다. 아니면 이런 신앙을 그저 일반 대중들의 소박한 신앙 형태로 간주하고자 한다면 이 세 종교에 다 같은 논리가 적용되어야 하거늘 무교만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은 형평이 맞지 않는다.....사정이 이러한데도 그들은 무당이 비는 것은 미신이고 자신들이 하는 행위는 正信이라고 생각한다. 미신이면 다 미신이고, 정신이면 다 정신이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는 그런 것은 없다. 기실 이런 신앙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의 수준은 대체로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는 인과적인 사고보다는 주술적인 사고로 세상을 파악한다.......사람들은 어른이 되면서 일정 수준의 추론적 능력이나 인지 능력을 발전시킨다. 따라서 신앙의 수준도 이것과 비례해 발전시켜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성공하지 못한다......한국사회는 이런 능력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한국사회는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인지능력은 어느정도 발달되어 있지만 신앙쪽으로 가면 여전히 초등학생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그다음의 이유로는 동조현상을 들 수 있겠다. 종교에서 말하는 교리가 아무리 비이성적이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으면 그 당사자도 동조현상을 일으켜 비합리적인 것을 믿어 버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이런 맹신은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폐해를 낳을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교도와 불교도가 사랑과 자비같은 그들 종교의 고등 덕목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면 한국사회가 이렇게 살벌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종교의 신자들을 다 합치면 전국민의 반 정도가 되는데 이들이 정말로 덕스러운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될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종교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불교나 그리스도교를 믿는게 아니라 앞에서 본 것처럼 종교를 이용하여 자기 잇속만 챙기는 구복주의자일 뿐이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인해 어떤 신앙은 미신으로 취급되고 어떤 신앙은 정통으로 우대를 받는 것일까? 이것은 우선  그 종교 교리가 갖고 있는 진리의 보편성, 혹은 진리성의 함유도와 상관관계가 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그 종교의 가르침이 사랑이나 자비, 지혜, 정의, 초월, 자유, 불멸등과 같은 보편적인 덕목을 얼마나 함유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달리 표현해서 각 종교가 갖고 있는 교리의 핵심에 이런 덕목들이 들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지금 세계 종교로 되어 있는 불교나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분명 이런 보편 덕목들이 핵심 가르침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보편성을 갖고 있는 종교는 세계종교가 되는 데에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이런 종교들은 어느 나라에 전파되어도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다. 보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해당지역의 문화와 생기는 마찰을 소화하고 그 문화와 섞이면서 새로운 종교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덕목의 보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가르침은 자기 지역을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예중 가장 비근한 예로 일본의 神道 같은 지역적인 특수 종교를 들 수 있다.....그런데 이와 같은 보편성이 없지는 않지만 문화적인 특수성이 강해 다른 지역에는 전교되지 않는 종교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유교가 있다.....그래서 유교는 동북아 삼국, 즉 중국, 한국, 일본에만 국한되는 가르침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무교는 보편성이 잘 갖추어진 종교라기보다는 원시종교 쪽에 가깝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확실히 불교나 그리스도교같은 고등종교 입장에서 보면 저급한 신앙으로 보일 수 있다. 보편성의 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나 그리스도교도 그 원 가르침은 보편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앞에서 누누이 본 것처럼 그 종교를 믿는 거개의 신자들이 보여주는 신행 행태는 무교 신자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무교 안에 있는 보편적인 요소들이 무시되었다는 데에 있다. 무교는 처음부터 아예 미신으로 낙인 찍혀 있었기 때문에 그안에 있는 고등적인 요소들마저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무교가 미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데에는 또 다른,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다. 무교는 권력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무교는 계속해서 권력과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미신으로 취급 받을 수 박에 없었다. 불교나 유교가 중국에서 들어오기 전까지 무교는 미신으로 천대 받은 적이 없다. 아니 무교는 외려 당시의 보편신앙이었다. 그러나 불교나 유교같은 수입종교가 권력과 결탁되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무교는 미신이란 비난을 피해 갈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수가 이 종교들을 믿게 되면서 또 그 힘에 밀릴수 박에 없었다......예수도 처음부터 신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교 역사 초기를 보면 '예수가 신이다, 아니다'하는 논쟁을 중심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313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는 신이 되었다. 예수는 사람들에 의해 신이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이 교리를 주장한 파가 다수파인지라 '예수는 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소수파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예수가 신이라는 교리는 2천년동안 한 번도 의심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정통의 설이 된다. 이와같이 어떤 한 종교나 교리가 정통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어떤 확실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소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인간사회에서는 만일 조직이 없다면 그것은 힘이 없다는 것과 같은 소리이다. 한국 무당들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 결집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객관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지 않고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 종교에서는 이 세상을 '마야'라고 표현했다. 마야란 幻 혹은 幻影이란 뜻으로 여기에는 많은 뜻이 있지만 가장 정통적인 해석은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만의 잣대로 왜곡해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는 누구나 다 자기만의 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외부 세계는 언제나 그 안경에 의해 굴절되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세상의 참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환상 속에 산다고 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사람들은 아무리 고등종교를 신봉해도 여전히 자신만의 안경을 끼고 주술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신도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무교와 다를 게 없는 원시 신앙에 가까운 종교이다. 이렇다 할 교리도 없고 경전도 없다. 그냥 신령 잘 모셔서 복 받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도는 일본의 정치권과 결탁되었다. 그래서 일본의 대표종교가 되었다. 지금 세계종교계에서 일본의 신도를 미신으로 매도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신사에서 근무하는 궁사들도 우상숭배자라고 지탄받기는 커녕 사회에서 나름대로 존경받는다. 한국 전역에 무당집이 있듯이 일본 전역에도 신사가 없는 곳이 없다. 아무리 비싼 동경의 땅이라도 신사가 없는 곳은 없다. 게다가 신사 건물들 가운데에는 문화재가 된 것이 한둘이 아니다....이런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들이 신도를 그네들의 정통 신앙으로 인정해 체제안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처럼 하지 않았다. 한국의 무교에도 일본 신도만큼이나 현대에 재조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한국인들이 솔직하게 무교를 자기들의 근본 신앙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고 체제안으로 흡수해 공개적으로 그 발전 대책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건대 이런 일이 가까운 미래에 생길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문화나 정신을 타자의 시각으로 본 그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인들이 이런 피식민 백성의 근성을 탈피할지 어떨지는 순전히 한국인 자신들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