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17-03-10 03:00:00 수정 2017-03-10 03:00:00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310/83256434/1#csidxb5b2f106bbb92809e5d5c68c15a5838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 김선우(1970∼ )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 … …
별들이 움직였다
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2011년을 기억함
김선우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의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흔들리는 계절들의 성장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마른 옥수숫대 끝에 날개를 펴고 앉은 가벼운 한 주검을
그대의 손길이 쓰다듬고 간 후에 알았다
세상 모든 돈을 끌어 모으면
여기 이 잠자리 한 마리 만들어낼 수 있나요?
옥수수밭을 지나온 바람이 크레인 위에서 함께 속삭였다
돈으로 여기 이 방울토마토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나요?
오래 흔들린 풀들의 향기가 지평선을 끌어당기며 그윽해졌다
햇빛의 목소리를 엮어 짠 그물을 하늘로 펼쳐 던지는 그대여
밤이 더러워지는 것을 바라본지 너무 오래 되었으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번져온 수많은 눈물방울이
그대와 함께 크레인 끝에 앉아서 말라갔다
내 목소리는 그대의 손금 끝에 멈추었다
햇살의 천둥번개가 치는 그 오후의 음악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합니다
받아줄 바닥이 없는 참혹으로부터 튕겨져 떠오르며
별들의 집이 여전히 거기에 있고
온몸에 얼음이 박힌 채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빈 그릇에 담기는 어혈의 투명한 슬픔에 대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동하는 몸과 탐욕한 자본의 폭력에 대해
마음의 오목하게 들어간 망명지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이다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 길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니다
가냘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져 올릴 때
하나씩의 그물코,
기약 없는 사랑에 의지해 띄워졌던 종이배들이
지상이라는 포구로 돌아온다 생생히 울리는 뱃고동
그 순간에 나는 고대의 악기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태어난 모든 것은 실은 죽어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말한다
살아가고 있다!
이 눈부신 착란의 찬란,
이토록 혁명적인 낙관에 대하여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온갖 정교한 논리를 가졌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옛 파르티잔들의 도시가 무겁게 가라앉아 가는 동안
수 만 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 올려졌다
공중천막처럼 펼쳐진 하나의 그물이
무한 하늘 한 녘에서 하나의 그물고가 되는 그 순간
별들이 움직였다
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월간『문학사상』(2012년 1월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2012 올해의 좋은 시 100選』(아인북스, 2012)
시는 ‘그 풍경’에서 시작된다. 대체 어떤 풍경인지 잘 보이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상상력은 풍부해지는 법이다. 여기서의 ‘그 풍경’은 상상하는 모든 사람의 것, 바로 당신 가슴속의 그 풍경이 된다.
짐작건대 이 풍경이란, 춥고 위태롭다. 이 시 어디에서도 풍요롭다는 느낌, 단단히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풍족한 자원과 든든한 뒷배가 아니라 가난한 서로의 존재였다. 이를테면, 네가 거기 있으니까 위안이 되었다는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서 위안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서로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 온기로 인해 살 수 있었다. 시인은 그것을 서로가 서로의 신이 되어 서로를 구원하는 풍경이라고 읽었다. 그리고 황량한 터전에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일러, 시인은 ‘혁명’이라고 불렀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는 프랑스의 삼색기를, 다른 누군가는 격동과 붉은 피를 떠올릴 것이다. 혹자는 녹두 장군과 임꺽정을, 또 혹자는 체 게바라를 연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혁명의 핵심은 역사에도 혁명가에도 있지 않다. 혁명의 심장은 희망이며 사랑이다. 사람이 사람의 시대를 희망하는 것,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바로 이것이 혁명이라고 이 시인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이 혁명이라면 이것은 완료될 수 없는 것이다. 희망이 혁명이라면 이것은 그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기꺼이 ‘무한한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두 번 세 번 봐도 멋진 표현이다. 무한한 사랑과 희망이라니.
나민애 문학평론가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그림♠음악♠낭송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별/이병률 (0) | 2017.03.23 |
---|---|
[신철규] 눈물의 중력 (박성우 시배달) (0) | 2017.03.17 |
[구상] 우음(偶吟) 2장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0) | 2017.03.03 |
[김승희] 장미와 가시 (민애의 시가 깃든 삶) (0) | 2017.03.03 |
[천양희] 별이 사라진다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0) | 2017.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