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물' 베이비박스 10년, 편지 1000통 모두 "미안해"
김승재 기자 입력 2019.01.03. 03:06
베이비박스 처음 설치 이종락 목사, 10년간 거쳐간 갓난아기 1515명 '처음에는 나쁜 생각도 했었는데 배 속에서 꼬물거리던 너를 그렇게 할 수 없었어. 혼자 낳아 키워보려 했지만 현실은 너무 무서웠어. 사랑하고 미안해.'(2018년 12월 19일) '널 안 보내려고 네 할머니한테 떼도 엄청 많이 쓰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 그냥 내 진심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미안해. 정말 널 버린 게 아니야.'(2018년 12월 1일) 2009년 12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 교회 담장 밖에 '베이비 박스(baby box)'가 설치됐다. 올해 10년째를 맞는다. 라면 박스 두 개를 포갠 크기의 상자에 두고 간 생명은 2일까지 1515명. 이틀에 한 명꼴이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편지를 남겼다. 1000통쯤 된다.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베이비 박스를 운영해온 주사랑공동체 대표 이종락 목사는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 아기를 버리는 부모는 거의 보지 못했다"며 "엄마가 아이를 살리려 갖은 방법을 고민한 끝에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곳이 여기"라고 했다. 베이비 박스 설치 초창기에는 "부모가 아기를 버릴 마음을 쉽게 갖도록 조장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보건복지부와 관악구청은 형법상 유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철거를 요구했다. 매일같이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항의 전화가 교회로 걸려왔다. 논란이 많았지만 이 목사는 "베이비 박스를 없앤다고 해서 아기를 버리는 부모가 사라지진 않는다"며 계속 운영했다. 방범 카메라도 설치하지 않고, 박스에 묻은 지문도 수시로 닦았다. 아이를 두고 간 부모가 추적당해 처벌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이를 받아준 것은 아니다. 베이비 박스에 아기가 들어오면 교회에 알람이 울린다. 이 목사나 자원봉사자들이 곧장 밖으로 달려나와 아이 엄마를 붙잡는다. 사연을 듣고 "엄마가 직접 키우면 매달 생활비와 육아용품 등을 지원하겠다"고 설득도 했다. 상담한 엄마 가운데 30%는 아이를 다시 데려갔다고 한다. 아이를 두고 가는 사람 중에는 10대 미혼모도 많다. 부모나 교사에게 임신 사실을 들킬까 겁나 배를 꽁꽁 싸매고 다니다 화장실이나 친구 집에서 혼자 출산하는 사례들로 추정된다. 이 목사는 "산에서 애를 낳아 구덩이에 파묻어 버리려 했는데 아기 울음소리에 마음을 바꿔 여기를 찾아온 여고생도 있었다"며 "하혈이 심해 아기를 건네고는 바로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다"고 했다. 베이비 박스에 온 아이들은 교회가 한 달쯤 보호하다 보육원으로 보낸다. 봉사자 3~4명이 베이비 박스에 남겨진 아이들을 돌봐준다. 봉사자들은 "아이에게 정(情)을 너무 주거나 자주 안아주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는다. 베이비 박스 서시온 상담사는 "나중에 보육원이나 입양 가정에 갔을 때 전보다 관심과 사랑을 덜 받으면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목사 내외가 사비(私費)를 털어 시작했던 베이비 박스는 10년 사이 후원자가 1300명으로 늘었다. 매달 1만~2만원을 보내거나 분유·기저귀를 기부하는 사람들이다. 4~5년 전부터는 정부와 지자체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베이비 박스 운영진의 향후 계획은 '베이비 박스를 없애는 것'이다. 이 목사는 "아이를 지키고 싶은데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처지의 부모들을 우리 사회가 지켜줘야 베이비 박스가 더는 필요 없어질 것"이라며 "출산 기록이 남지 않도록 비밀을 보장해주는 '비밀출산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했다. 비밀출산법은 임신한 비밀을 보장하고 출생신고 시 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상 나타나지 않게 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2월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아기 놓고가면 달려나가 엄마 설득.. 30%는 마음 바꾸고 다시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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