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우주로 가는 포차 /박해성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12. 2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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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가는 포차

 

박해성

 

 

방파제를 바라보며 엉거주춤 주저앉은 포장마차는

바람이 불 때마다 곧 날아갈 듯 죽지를 퍼덕인다

노가리를 구워놓고 재채기하듯 이별을 고하는 남자

그 앞에서 여자가 운다, 나는 번데기를 좋아하고 당신은

나비를 좋아하지 소주잔을 비우며 그가 중얼거린다

그래, 어차피 그게 그거니까, 한잔 더

 

술맛도 모르면서 무슨 시를 쓰니,

밤꽃이 흐드러진 유월 숲을 등지고 서 있던 사람

얼굴을 반쯤 덮은 수염이 고독처럼 이글거렸다

너는 시를 사랑하고 나는 신을 사랑하지, 경전을 요약하듯

건조체로 시작한 그의 말에 나는 벌 쏘인 듯 심장이 얼얼했다

어차피 그게 그거니까 자, 마지막으로 딱 한잔만

 

부두에 묶인 배처럼 우주로 가는 로켓처럼

엑소더스를 꿈꾸는 걸까, 엉덩이를 들썩이는 포장마차

거기서 파는 안주는 실연처럼 너무 매워 눈물이 나지만

정말이지 나 미치도록 괜찮다네, 아슬아슬 다 괜찮아

마주 앉은 신에게 술잔을 높이 든다, 건배!

 

스무 살이 떠난 자리, 길고양이 울던 자리

랭보가 빈 잔을 앞에 놓고 멍하니 앉아있다

체 게바라가 실눈 뜨고 줄담배를 피우고 있다

 

 

 

시집 우주로 가는 포차(지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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