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김명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12. 24. 20:36
728x90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김명인

 

 

철썩이며 부서지는 파도의 실패들

감았다 풀었다 되감는

이것을 놀이라 할까?

태곳적부터 펼쳐놓은 실마리니

파도는 써버릴 무료 무진장 남아 있다

넘볼 수 없는 해발의 아득한 넓이

푸르둥둥한 걸신들이 저녁을 끌고 온다

가장 낮은 현을 건드리는 고요

내가 못 견디는 쓰라림

나 혼자 맛보려니, 사람아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어림잡아 그대는 일만 리 밖에 서고

나는 한 육십 리쯤에 그대를 당겨놓고

차감하니 수평 너머에 뜨는 불빛

까막득하여 분간이 안 되는 그 불빛으로

꽝꽝 언 마음 녹이느니

이 어로(漁撈) 얼어붙은 겨울 밤바다가 일찍 잠근다

결심은 거추장스럽고 너무 많은 어둠 밀려와

파도는 파도 소리밖에 업을 줄 모른다

 

 

 

시집여행자 나무(문학과지성사, 2013)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장들 /김명인  (0) 2020.12.25
우물 밖 동네 /김명인  (0) 2020.12.24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김명인  (0) 2020.12.24
팽이 2 /김광규  (0) 2020.12.24
그림자 12 /김광규  (0) 2020.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