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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김명인
철썩이며 부서지는 파도의 실패들
감았다 풀었다 되감는
이것을 놀이라 할까?
태곳적부터 펼쳐놓은 실마리니
파도는 써버릴 무료 무진장 남아 있다
넘볼 수 없는 해발의 아득한 넓이
푸르둥둥한 걸신들이 저녁을 끌고 온다
가장 낮은 현을 건드리는 고요
내가 못 견디는 쓰라림
나 혼자 맛보려니, 사람아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어림잡아 그대는 일만 리 밖에 서고
나는 한 육십 리쯤에 그대를 당겨놓고
차감하니 수평 너머에 뜨는 불빛
까막득하여 분간이 안 되는 그 불빛으로
꽝꽝 언 마음 녹이느니
이 어로(漁撈) 얼어붙은 겨울 밤바다가 일찍 잠근다
결심은 거추장스럽고 너무 많은 어둠 밀려와
파도는 파도 소리밖에 업을 줄 모른다
⸺시집『여행자 나무』(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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