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마음 이끄는 이 누구신가 /이덕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12. 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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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이끄는 이 누구신가

 

이덕규

 

 

차비가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은 몸을 두고 늘 멀리 나가 헤매느라 바쁘다

예전엔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였는데

언제부턴가 뒤처지는 몸을 마음이 앞질러간다

 

어쩌다 몸이 덜컥 고장이 나면

하루쯤 집에 머물면서 팔 다리를 주물러 주던 마음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한 데 눈을 팔아서

며칠씩 몸을 떠나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어슬렁거리다 온다

 

오래 비웠던 빈집처럼

썰렁한 몸으로 들어서는 마음은

언제나 축축하게 젖어 있다

 

어느 날은 옛 마을로 가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탄 마음이 누굴 만나고 왔는지

늦은 밤 만취 상채로 돌아와

고된 몸을 못살게 굴면서 속울음을 운다

 

늘 바깥으로 돌고 돌아 서먹해진 마음이 어쩌다 집에 들어와 피곤하다며

불을 끄고 누우면

파김치처럼 늘어진 몸이 먼저 깜깜해지는데,

 

불 꺼진 몸속에서 문득 골똘해진 마음이

천천히 일어나 생시인 듯 또 어디 먼 마음에 이끌려 꿈길을 간다

 

 

 

계간『불교문예(2020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