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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방식
김성희
목차도 없이 어스름이 깔린다
내가 읽을 수 없는 글자로 가득한 삶
매일 불던 바람이 안으로 빗장을 걸었다
낮에 빛나고 밤에 고요한 과오의 몽타주
달빛이 열어놓은 서랍에는 지나간 생을 비추는 거울이 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감정이 지난 생을 건너왔다
감정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을 때
무릎을 세우고 앉는 서술적 자아
뜨거운 내면을 고백하는 일은 꽃이 송이째 떨어지는 것
그리하여 거뭇한 폐에 쌓이는 순한 참회에
자꾸 옆구리가 찔리고 기침이 터진다
숨을 크게 쉰다는 것이 그만 구두를 잃어버렸다
어둠에 익숙지 않은 구두가 저 혼자 길을 낳는다
구두가 해지도록 걷고 걷다가
끝나버린 한 편의 로드무비
환한 스크린에는 내게 인식되지 못한 활자들이 자막으로 오른다
―시집 『나는 자주 위험했다』(미네르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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