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액면가 /윤준경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3. 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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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면가

윤준경


나는 나를 늘 싸게 팔았다
아예 마이너스로 치부해 버렸다
내세울 게 없는 집안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에 육십 년이나 절었다
그래서 나의 액면가는 낮을 수밖에 없고
때로 누가 나에게 제값을 쳐주면
정색을 하며 다시 깎아내리곤 했다
자신의 액면가를 곧잘 높여 부르는 이들도 있는데
겉으로는 끄덕끄덕하면서도
속으로는 씁쓸하다
그들의 액면가는
부르는 만큼 상종가를 치기도 하는데
나는 늘 나의 값을 바닥에서 치르며
흘끔흘끔 앞뒤를 곁눈질 한다
깎이고 깎인 액면가가 내가 되었다
이제라도 제값을 받아보자고
큰소리 한번 치고 싶은데
유통기한이 끝나간다
무릎이 저리다



ㅡ 시집『시와 연애의 무용론』(시와시학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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