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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길상호
아픔과 슬픔처럼 닮아서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상현달과 하현달은 어둠의 방향이 다른데도
엄마는 매번 똑같은 옷을 두 벌 샀다
그럴 바에야 그림자를 입고 다닐 거예요,
그때부터 우린 서로 달라지는 게 지상의 목표가 되었다
동생이 폭식을 즐기면
나는 거식이 즐거웠다
동생이 심장에 불을 가져다놓으면
나는 배꼽에 얼음을 채워놓았다
참다못한 엄마는 우리를 사진관에 데려가
하나의 액자 속에 나란히 앉혀 사진을 찍었다
플래시가 터지고 빛이 둘을 묶어놓는 동안
나는 몰래 한쪽 눈을 감았다
너는 도대체가 말을 듣지 않는구나,
엄마가 나의 감은 눈을 칼로 긁어낼 때
일란성 아픔과 슬픔 사이에
불구의 형제가 하나 더 태어났다
―『애지愛知』(202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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