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어느 가족
엄원태
그 집 식탁과 밥상은 높낮이가 참 다양했다.
식구들의 자세는 제각각이었고,
조금 이상하지만, 자유로운 분방함이
별미의 반찬처럼 언제나 거기 곁들여졌다.
일용할 양식은, 그 삐딱한 자세들만으로 이미
충분한 어떤 것이었다.
어느 저녁,
사람들 앞에 전시품처럼 진열된 그들은
식은 국처럼, 풀이 죽었다.
심리분석가나 상담치료사 앞에 놓인 그들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거나 얼어붙은 떡 같았다.
더 큰 아이가 가게 주인의 시선을 가리는 동안
작은 딸아이는 먹고 싶은 막대사탕을 훔쳐내곤 했었다.
‘카무플라주’의 온기가, 유일하게
그들의 생계와 활달을 도와준 셈이었다.
가족은 원래 부재하였으니,
상실을 애도하거나 그리워할 필요조차 없었다.
다만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어느 자활이
거기 한때 빛나고 있었다고.
⸺『애지』(2021년 봄호)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모는 약속을 지켰다 /윤제림 (0) | 2021.04.17 |
---|---|
통각(痛覺) /안도현호) (0) | 2021.04.17 |
거짓말에 대한 향기 /서정원 (0) | 2021.04.17 |
흘러 다니는 섬 /조정인 (0) | 2021.04.17 |
꼬꼬닭 수수께끼 /최민정 (0) | 2021.04.17 |